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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란 Apr 21. 2022

제주살이 가족의 루틴

백수 부부에게도 평일과 주말의 구분은 중요하다

 우리 5시간만 헤어지자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남편이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아이의 옷을 챙겨 입힌다. 전 주에 미리 받아 냉장고에 붙여놓은 아이의 유치원 일주일 식단표를 체크하며 오늘 아침 과일을 먹일지 말지를 남편이 고려하는 동안 나는 재빠르게 아이에게 물을 먹이고 바나나 맛 유산균을 건네준다. 어린아이가 있는 여느 가족의 아침처럼 정신이 없고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9시 30분. 신 제주 도심에 도착한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남편과 나는 각자의 방향으로 발길을 돌리면 지금부터 진정한 오늘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5시간 동안 남편과 나는 엄마와 아빠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고, ‘각자의 이름’을 단 개인이 되어 오전을 보낸다. 반경이 넓을 수는 없다. 아이 교육기관이 있는 신 제주 안팎에서 점심을 포함한 5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겼고, 그 시간을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평일 루틴으로 채운다.









남편은 매일 10시 아침 수영을 다닌다. 물 기운을 맞고 나서는 한 시간의 공백 시간을 갖고 주 3회 요가를 하며 뭉쳤던 몸을 푼다. 요가를 가지 않은 2회는 한라 수목원의 산책 코스를 달린다. 오전을 내리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보낸다. 1시 이후부터는 점심 메이트(나다)와 자신이 미리 검색해 놓은 맛집 탐방에 나선다. 점심까지 먹고 나면 아이 하원 시간이 된다.



남편에 비해 나는 활동 범주도 작고 정적이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그 즉시 인근 좋아하는 카페를 향한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10시다. 앉자마자 블로그에 일기 비슷한 글을 적으며 40여분을 보낸다. 글도 쓰고 빌려온 책도 읽으며 1시간 반 시간을 보내고, 걸어서 인근의 탐라 도서관을 간다. 내 책과 아이의 책을 주기적으로 대출하고 반납한다. 주 3회는 요가를 하고, 주 2회는 영어 학원을 간다. 나만의 오전을 보내고는 내 점심 메이트(남편이다)와 맛있는 외식을 하고 적당한 담소를 나누고, 우리는 2시 반 아이를 데리러 간다.



유치원 하원을 마친 아이는 주 2회 수영을 다니고, 주 1회 미술을 한다. 방과 후 취미 활동들이라 즐기며 잘 다닌다. 유치원에서 학원까지 픽업을 하고 대기시간에는 간식을 먹이며 학원 일정을 부모 둘이 함께한다. 그렇게 오후 학원 일정까지 모두 마치면 우리는 다시 달려 시골집으로 향한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평일 루틴은 종료된다.









아이가 있는 부모의 삶이란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 우리에게 제주살이란 ‘제주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일’이다. 단시간의 여행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생활하며 현지인처럼 일상을 경험하는 . 아이는 이곳에 오기 전처럼 여전히 유치원을 가고 학원을 다닌다. 우리는 일하러 가는 대신 공동으로 살림을 하며 여전히 아이를 케어한다. 7세 부모라면 그곳이 어디든 비슷한 풍경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이곳이 제주일 뿐 아이 중심적 일상은 동일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민낯의 제주살이’의 모습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온 가족이 함께 제주의 시골길을 달려 제주의 도시로 출근을 한다. 아이는 유치원에 입장하는 순간 학생으로, 우리 부부는 각자의 개인으로서 고정적인 루틴을 지키며 살아간다. 그리고 반복되는 루틴은 이 헐거운 시간의 중심을 잡아준다. 직장인에게 근무 시간이 존재하기에 퇴근이 값진 것처럼 평일의 루틴이 있기에 주말이 존재한다.









아이의 유치원이 마치는 금요일 2시 반, 이제야 우리 가족의 한 주도 마무리가 된다. 평일 한주가 끝나면 주말이 시작된다. 매일이 휴일 같은 백수 부부에게도 토요일과 일요일은 느긋하고 편안하다. 집 마당에서 느긋하게 한 주의 피로를 풀며 마냥 늘어져 있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동해 아침부터 이른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언제든 주말처럼 살아도 되는 두 달을 살아보니, 정작 그 소중함이 옅어졌다. 자유로운 주말을 느끼기 위해 반복적인 평일을 살아간다.




금요일 저녁은 그냥 기분이 좋은 것, 월요일 아침은 그냥 마음이 분주한 것. 이 정직한 요일감은 제주살이를 하는 백수 부부에게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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