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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란 Jun 07. 2022

제주 두 집 살이

어쩌다 제주도에 집이 두 개가 되어버렸다



제주살이의 낭만과 현실 사이에서






현재 우리 가족은 제주의 세 번째 집에 머물고 있다. 첫 번째 집은 세 달, 두 번째 집은 한 달,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제 두 달을 예약했고, 지금은 한 달이 지났다. 당초 계획했던 대로 떠돌이 삶을 잘 살고 있다. 조천, 한림, 애월을 순차적으로 돌면서 제주시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이의 교육 문제다. 아이의 아이에 의한 아이를 위한 삶을 사는 부모에게 있어 제주살이의 고정값은 아이가 될 것이고, 7세 아이가 매일 여행하면서 살지 않는 한 일상이 필요했다.




아이는 제주에 오기 전처럼 평일에는 유치원과 취미 학원을 다니며 일상의 루틴을 만든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좋아하는 운동이나 미술을 하나씩 배우며 보통의 7세 인생을 보낸다. 제주살이라고 부르지만 제주에서 생활하는 일상일 뿐 아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업과 권태로운 에 지친 부모에겐 인생의 소풍 같은 제주살이지만, 평범한 일상이 더 좋은 아이에겐 그대로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주고 싶다.




아이의 유치원과 학원은 대게 신제주 도심에 몰려있다. 평일 5일 아침마다 아이와 함께 등원 준비를 하며 도심으로 나간다. 조천과 한림에서는 편도 30분 여분을 달려 도심으로 간다. 이 순간은 우리 부부도 마치 출근하는 기분으로 하루 종일 밖에서 지낼 각자의 물품들을 챙겨서 나간다. 아침 9시에 집을 나서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서) 빠르면 3시, 늦을 땐 8시에 집으로 돌아온다. 2시 반에 유치원은 끝나지만 미술과 수영의 시간표에 따라서 중간 대기시간까지 고려하면 어떤 날은 하루 종일을 밖에서 머무는 셈이다.











자연히 우리가 주로 활동하는 영역은 신제주 안팎이 되어간다. 아이가 공식적으로 유치원을 가는 동안이 우리 부부의 가장 활발한 개인 시간이 되기에 시간적 활용을 위해서 이 안에서 움직인다. 도서관에서 주기적으로 책을 빌리고, 대형 마트에서 장을 보고, 요가원에서 가서 요가를 하고, 수목원에서 달리기를 하는 등 우리 삶의 테두리는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몇 지역의 집을 거쳐 제주살이를 하지만, 아이가 중심이 되는 삶에선 도심이 가장 편하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내가 생각한 제주살이의 주된 시각적 이미지는 작고 아담한 집과 그 뒤편으로 싱그러운 감귤밭이 펼쳐지고, 앞마당에는 낮게 깔린 돌담이 집 주변을 둘러싸는, 조용하고 목가적인 그림이었다. 우리 역시 그런 삶을 그리며 제주에 왔고,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기 전까지는 대체적으로 그 시각화된 제주살이 모양새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에게 일상 루틴이 생긴 이후로는 우리도 덩달아 그에 맞는 평일 루틴이 생겼고, 조금씩 현대적인 공간과 도심과 가까운 지역으로 거처를 점차 옮겨가기 시작했다. 두 번째 집은 첫 번째 집보다 조금 더 넓고 쾌적하고 모던했고, 세 번째 집은 도심과 훨씬 가까운 2층짜리 단독 주택으로 점점 소박하고 조용한 제주스러운 집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세 번째 집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앞으로 남은 기간을 지낼 집으로 신제주 도심의 투룸을 계약하기에 이르렀다. 아이를 키우며 살기 편한 모든 생활 여건이 충족된 지역으로 현재 우리의 평일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배경이 되는 곳. 지금까지 한 달, 두 달 단위로 렌트하며 살던 집의 형태가 아니라 1년이라는 연세로 계약을 했다.




제주 살이를 이미 반년 가까이를 써버렸는데도, 1년 단위로만 계약되는 집을 선택한 건 의외로 저렴한 월세비 때문이기도 했다. 저렴하다는 건 워낙에 상대적인 개념이지만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집들의 평균 한달 렌트비는 250-350만 원선이었다. 그리고 1년 계약을 한 도심의 투룸 집은 공과잡비를 포함해도 한달 70-80만 원 선이다. 투룸 집값 4개월 값과 맞먹는 한달살이 집들이 무척 비싼 건지, 투룸이 싼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딱 하루 고민하고 바로 계약을 했다.












도심 투룸 집과 시골 단독주택이라는 두 집 살림을 한지 한 달 반이 흘러간다. 그야말로 돈지랄을 하며 두 집을 모두 쓰고 있는 중이다. 양쪽 집값만 생각하면 속이 많이 쓰리지만, 두 달을 기다렸다 계약하기엔 매물이 없다는 말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하기에 우리의 선택을 여러 번 꼽씹지는 않는다. 대신에 집 플렉스를 누린다. 무조건 도심으로 와야 하는 평일, 투룸집을 숙소처럼 쓴다. 어쩐지 쳐지는 날에는 낮잠도 자고, 아이가 학원을 가기 전 공백 시간에는 간식을 먹이며 쉬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케줄이 없는 평일 오후나 주말에는 온종일 애월의 단독 주택에서 지낸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가 딸린 2층짜리 집이라 지인들을 불러 묶게 해주는 호스트 코스프레도 한다. 이제는 다시없을 너른 집의 호사를 여러 방식으로 최대한 누려야 본전 생각이 덜 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제주살이 3번째 집의 마지막 날이 되면, 이제는 숙소가 아닌 집이라고 불리는 투룸으로 완전한 이사를 하게 된다. 더는 제주살이의 최고의 로망, '제주스런 '이라는 공간에는 여한이 없다.




두 달 동안의 제주 두 집 살이가 끝이 나면 반년 간 떠돌아다니던 생활을 접고, 잠시나마 진짜 제주 도민처럼

일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수개월간 여행을 하듯 낭만을 담아 제주를 즐겼다면, 남은 시간 동안에는 제주 도심에서 가장 현실적인 제주를 일상으로 담아갈 테다. 




낭만적인 제주에서 편안한 일상이 되는 제주로,

어떻게 보면 진정한 제주살이자, 가장 보통의 제주살이가 될 앞으로의 나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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