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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란 Jun 17. 2022

제주에서 호스트를 경험하다

효리네 민박을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2달 동안 4팀이
예약되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지독히도 개인주의다. 사회생활 범주도 작고 만나는 사람도 제한적이다. 남편이 회식에 절대 참여하지 않는다면, 나는 점심을 혼자 먹는 게 좋아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닐 정도로 혼자만의 시간을 중요시 여기는 회사원 부부가 우리다. 처가살이 4년 후 야심 차게 독립하여 번듯한 우리 집 하나를 마련하고도 그 흔한 집들이가 웬 말이냐. 남편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부인은 원체 좁은 인간관계로 산중에 칩거하듯 조용한 홈 라이프를 보냈다. 손님용 식기들은 애당초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뭐 전혀 상관없었다. 우리가 다른 이의 집에 가는 것도, 누가 우리 집에 오는 것도 싫은, 안 주고 안 받는 게 편한 자칭 개인주의 타칭 이기주의 부부였으니까.




제주살이가 결정되고 지인들이 부러워할 때면 한국인 특유의 예의상 멘트가 나왔다. “언제 한번 제주도 놀러 와" 누구나 그렇지만 인사차 하는 말이고, 민망함에 끝인사 같은 거였다. 단 한 번이고 누군가 진짜 오리라고는 개인주의 부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하지 않을 일은 남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가벼운 생각과 주둥아리들. 특히 남편의 주둥아리가 더 가벼웠는지 제주의 겨울과 봄이 지나고 날 좋은 5월이 되자 남편 회사 지인들의 연락이 잦아졌다.




첫 번째 집을 제외하고는 두, 세 번째 집들은 2층이라 손님을 맞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분리된 집은 아니기에 서로의 사생활이 그대로 다 노출되는 곳들이다. 불안한 대화가 오가고 5, 6월에 남편 회사 지인 3팀이 우리 집을 예약했다. 첫 번째 팀은 4인 가족팀으로 5박 6일을 묶으셨고, 두 번째 팀은 총각 2인으로 2박 3일을, 그리고 마지막 팀은 4인 가족팀으로 2박 3일을 지내다 가셨다. 그리고 다가오는 6월의 마지막 주에는 내 지인(친구) 3인 가족이 1박을 머물기로 예정되어있다. 










두 달 동안 총 4팀이 우리 집을 찾는다는 사실에 나는 3월부터 심장이 벌렁거리고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세 번째 집(두 달 살이)이 가장 규모가 크고, 집주인도 곁에 살지 않아 손님을 초대하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공동으로 쓰는 거실이 있지만 저녁 이후 동선은 완벽하게 분리가 된다. 사실 그게 아니라면 수락이 어려웠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숙박을 책임진다는 것에는 깨끗하게 청소된 방과 청결한 침구다. 손님방이 2개고 각 방당 2인 기준의 이부자리들이 세팅되어있어야 했다. 방 1개당 킹사이즈 바닥 요와 덮는 이불 그리고 배게 2개가 한 세트다. 그리고 난 총 두 세트를 빨고 말려야 했다. 하얀 겉싸개 침구를 모두 제거 후 세탁하고 말리고 다시 싸매어 놓는다. 어떤 날에는 하루를 차이로 연달아 오는 팀을 위해서 나가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빨래와 청소를 해야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차 렌트 시간이 애매한 첫 번째 손님 지인의 공항 픽업을 나가기도 했고, 아침 조식으로 간단한 먹거리를 사다 채워 넣는 등 각자 나름의 준비를 했다.




이렇듯 보이지 않는 준비와 긴장 속에 손님들이 오신다. 일면식 하나 없는 그들을 광대 승천한 어색한 웃음으로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다고 넉넉한 마음씨의 호스트처럼 맞이한다. 나도 렌트한 이 집이 어색한데 조금 더 살았다고 내 집인 양 집 소개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술 한잔을 하고 내일의 여행 일정을 물으며 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해야 했다. 우리에겐 익숙한 제주지만 여행객들의 들뜬 눈빛과 분위기 그리고 호의에 고마워하는 모습들을 볼 때면, 일순간 진심으로 아낌없이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되기도 했다.











손님들의 분위기와 성향은 모두 제 각각이라 매 순간 맞는 손님들이 처음인 냥 우리 가족도 평상시와는 다른 감정이 된다. 피곤함 속에 옅은 설렘이 깔린다. 어제와 같은 오늘, 그리고 오늘과 같을 내일을 맞는 제주살이 5개월 차가 넘는 지금. 우리 집에 우리 외에 낯선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달뜬 감정을 준다. 가장 기본만 준비함에도 어딘가 피곤한 손님맞이는 낯선 이들과 어색하게 시작하는 저녁 식사부터 시작된다. 손님 입장에선 숙박료 대신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집에 왔는데 맛있는 식사 한 끼를 대접하고 싶은… 그러다 보면 매일 밤이 그렇게 채워진다.




술자리가 곁들여진 저녁식사 때가 되면, 호스트인 나는 어쩐지 무리하게 된다. 어색함이 싫어 술 잘 마시는 척을 하다가 두 번의 술병이 나고 한 번의 가벼운 장염이 왔다. 사실 특별히 잘해주는 것도 없고 신경 써주는 것도 없는데 내 몸과 마음이 이토록 고단한 걸 보면 호스트라는 것은 지금껏 내가 해보지 못했던 종류의 세계임은 분명하다.




이런 멘탈 약한 호스트와는 별개로, 손님들은 어쩌면 효리네 민박처럼 멋들어진 집에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는 제주살이 호스트를 그려 왔을지도 모른다. 제주 전원주택에 살면서 손님이 오면 야외 테이블에서 직접 숯불에 구운 제주 흑돼지를 한라산 소주와 함께 내어줄 넉넉한 마음씨와 여유로운 집주인의 모습. 낭만 있는 제주살이를 즐기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부흥이라도 해야겠지만 현실은 우리도 이곳이 제주란 걸 가끔씩 잊는다.






매일 밤 야식을 사오는 손님에서 직접 한 상을 차려준 손님까지 다양하다






여전히 사람들을 초대하고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놓고 먹고 마시고 얘기하며 밤새 노는 건 지극히 부담스러워하는 개인주의 부부지만, 분명한 건 그들 덕에 우리 부부도 틀림없이 '아주 잠깐씩'은 즐거웠다는 것이다. 언제 이렇게 너른 집에서 호스트가 되어 사람들을 맞이해볼 수 있겠는가. 간헐적 숙소 호스트였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 조금이나 성숙한 사람이 되어볼 수 있도록 제주가 선물한 낯선 경험이 아닐지. 개인적인 우리도 결국 사람 안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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