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7개월 차를 넘기면서 나는 이제야 제주가 익숙해지기 시작했는데, 남편은 조금씩 일상의 편안함을 넘어 비일상의 설렘을 찾기 시작했다. 연초부터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가긴 했지만 그가 우리 가족 세 사람의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할 때에도, 여행지의 일정을 짜고 있을 때에도 나는 실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도 내 집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여행 중인 일상을 살고 있는데, 여기서 더 멀리 더 낯선 경험을 하러 떠나자고? 적응하는데 최소 3개월 이상은 걸리는 나 같은 사람에겐 듣기만 해도 고되고 피곤하다.
코로나 확산세는 멈췄지만 재감염이 상승하고 아직까지 고국은 코로나 전면 해제를 풀지 못한 이 시국에 이름도 낯선 북유럽, 노르웨이로 18일간의 긴 여행을 떠나는 게 확정이 되었다. 무조건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 했던 남편이 정한 목적지는 장엄한 대자연을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우리가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이라는 시기적 상황이 주는 보상 심리가 발동한 것일 테다. 그렇게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체격 좋은 북유럽 사람들이 설산을 배경으로 연어를 잡아 올리는 모습뿐인 노르웨이로 떠났다.
우린 철저하게 부모 여행자이기에, 아이의 유치원 방학 일정에 일주일을 더하고 앞뒤로 주말을 죄다 붙여 18일이란 날짜를 만들어냈다. 우리야 비일상을 살지만, 아이에게는 일상인 제주의 삶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을 썼다. 지금까지 아이를 동반한 여행 중 중 최장 기간이라 편식 심한 아이를 위해, 커다란 캐리어의 반을 오로지 먹거리로 가득 채웠다. 18일이란 기간이 무색하게 옷은 각 4벌로 단출하게 꾸렸다. 제주살이라는 장기 여행을 하면서 짐 줄이기에 있어서는 끊임없는 연습을 해놓은 탓일지, 세 가족의 노르웨이 여행 가방은 큰 캐리어 하나와 매는 가방 2개면 끝이 났다.
국제선이라는 문구가, 인천공항의 높다란 천고가 이제야 해외로 떠난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해 줬다. 아직도 해외여행이 흔하지는 않은 이 시국에 길지 않은 항공사의 줄을 서면서 설렘보다는 긴장감이 컸다. 그나마 같은 마음으로 출국을 결정한 다른 여행자들을 보며 작은 위안을 삼을 뿐이었다. 이미 전 세계의 여러 나라가 입국 시 코로나 전면 해제를 통해 확인서 하나 없이 간편하게 입국이 가능했다. 나가는 건 마음대로지만 들오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입국 전 코로나 검사 후 양성이면 한국 입국이 불가하다) 묵직한 책임감을 가득 안고, 우리의 햇반이 가득 담긴 캐리어를 수화물로 보내고 출국장으로 향했다.
최장 여행 기간에 걸맞게 최장 비행시간을 자랑했다. 인천에서 헬싱키를 거쳐 오슬로에 도착한다. 비행기를 타는 동안 하루가 바뀌어 있다. 낮인지 밤인지를 모를 무감각한 (말 그대로)붕뜬 몸과 마음으로 낯설고도 두려운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의 18일간의 여정이 시작됐다. 좁고 기다란 기이한 형태를 가진 노르웨이의 남부와 서부의 여러 도시를 자동차로 여행을 한다. 오슬로에서 시작하여 트론헤임-올레순-게이랑에르-라르달-플롬-베르겐-스타방에르-크리스 안산을 거쳐 다시 오슬로로 돌아온다. 큰 도시들은 이틀씩 머물며 자유 여행의 혜택인 여유롭고 입맛에 맞는 여행을 즐겼다. GDP 1위 국가라는 부유함이 느껴지는 대도시를 구경하고, 입이 떡 벌어질 대자연이 그저 집 뒷동산쯤 될 정도로 흔하디 흔한 배경이 되는 노르웨이의 자연도 두루 거쳤다.
매일매일이 색다르게 바뀌는 노트북의 배경화면처럼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멋과 맛에 현실감이 사라지고 아득해졌다. 하루치의 감동 폭이 깊고 넓어서 여행자의 하드웨어는 매일매일이 가득 찼고, 또 그래서 매일매일을 포맷해야 할 것만 같았다. 오늘의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 당장 어제가 그리고 그제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하루를 맹렬하게 눈에 담고 몸으로 느끼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긴장감도 녹여버릴 만큼 충실하게 그날 하루만을 살게 해주는 길 위의 여정들이 피곤하면서도 좋았다. 코시국를 살면서 꽁꽁 닫혀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걱정했던 아이도 잘 따라와 주면서 내가 그토록 이고 지고 살던 미래에 대한 오지 않을 걱정들의 무게가 가벼워져 갔다.
캐리어 안의 햇반 양이 줄어들고 이동하는 가방이 가벼워질수록 점차 여행의 끝자락이 보인다. 다음날 새로운 도시로의 기대보다는 돌아갈 집에 대한 기대가 커져가는 걸 보니 정말 돌아갈 때가 되었다. 마지막 여행지였던 크리스티안산의 작은 해변에서 돌아갈 집을 떠올렸다. 우리의 집이 어디였지? 원래 살던 우리 집인가. 아니면 제주의 집인가.
고작 18일간의 타국에서의 여행이,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당장 오늘만을 살다 보니 내일이, 올 한 해의 계획이 아득해졌다. 그러다 인천공항에서 다시 김포공항을 거쳐 익숙한 제주공항에 내리니, 느닷없이 현실이 그대로 쏟아졌고 이제야 긴 여행이 끝났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몸에는 오랫동안 돌려 입은 옷들이 걸쳐져 있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다.
제주 공항에는 세련되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제주 여행자들로 넘쳐났고, 나는 그들의 들뜬 분위기를 다른 감정으로 가로질러 빠져나왔다. 여전히 나는 여행 중임에도 더 멀고 더 낯선 곳을 겪다가 돌아오니 제주가 여행지가 아니라 집처럼 느껴진다. 익숙하고 편안한 동네에 다다르니 다소 지겨웠던 이곳이 새롭게 보이며 어서 그 지겨운 일상을 보내고 싶어졌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긴장감 가득한 설렘과는 온도 차이가 다른 편안한 설렘이 가득하다.
제주는 여전히 나에게 여행지다. 그럼에도 더 친숙한 편안함을 주는 익숙한 여행지로 다시 돌아오니 말할 수 없이 마음이 편하다. 나에게 있어 여행의 끝은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렘이다. 집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에 여행이 낭만인 것을 알기에 여행 중에 늘 집을 그린다. 나에겐 타국 같던 제주가 노르웨이 여행 중에는 그리던 집이 되었다는 생경한 사실이 신기한 '여행 중의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