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란 Dec 18. 2024

손 잡지 않는 사이

괜찮지만 괜찮지 않은 부부의 거리






모든 연애가 그렇듯 우리도 손을 잡는 것에서부터 연애를 시작했다. 그의 손은 따뜻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지는 못했다. 항상 그가 먼저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았다. 더운 날이면 손에 땀이 차니 손을 바꿔가며 잡았고, 추운 날이면 내 손을 그의 두꺼운 겉옷 호주머니에 넣어 잡았다. 굳이 불편하게 이렇게까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애써 손을 놓지 않는 그를 보면서 어렴풋이 알았다. 사랑받고 있구나. 아껴지는 것만 같아 마음속 어딘가가 해사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터 우리가 손을 놓았는지는 알 수 없다. 연애 6년을 내리 손을 잡고 지냈다. 아마도.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전생만큼이나 아득해서 기억을 오래 더듬어야 한다. 결혼을 하고 꽤 오래 친정살이를 했고 그리고 2년 후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의 세계가 통째로 뒤바뀌는 엄청난 일이 덜컥 와버렸다. 그래, 그즈음이었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 어미가 된 그 이후로.



엄마가 되는 삶은 한 시절이 끝났음을 의미했다. 하루아침에 나는 작고 나약한 빨간 생명체를 이 세계로부터 생존시키고 보호해야 하는 온갖 감각이 예민하게 곤두서는 날쌘 어미가 되었다. 다정하고 말랑하고 하늘거리던 여자의 삶의 빗장이 닫히고 굳세고 신경질적이고 늘 피곤한 어미의 얼굴. 엄마가 아니라 어미에 가까운 5년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나의 지나버린 시간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더 이상 아이의 생존에 몰두하지 않아도 되는, 길고도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우리의 시간들이 마주 보였다. 



무엇이 변할 걸까. 같은 듯 같지 않은 얼굴을 하고 나는 나와 그를 들여다봤다. 내 팔베개를 하며 잠이 드는 아이를 재우며 길게 뻗은 내 손끝이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낯설다. 화들짝 놀라 손가락을 순간 접어버렸다. 이제 그의 손가락 감촉을 잊어버렸다. 내가 잡고 닿는 살결의 감촉과 냄새 맡는 체취의 향기는 우리 사이의 작은 아이, 그 존재가 모든 걸 대체해 버렸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둘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는 이 존재에 감동했고 벅찼으며 우리 둘만 아는 그 행복을 공유하면서 동질의 비슷한 무언가를 나눠 가졌다.



모든 부부의 삶은 비슷할 것이라고. 이제 우리는 형제 비슷한 가족이거나. 같은 전쟁을 치러낸 전우애 가득한 친구이거나. 아직도 퇴사하지 못한 회사에서 매일 보는 동료이거나. 이 셋 중 어딘가라고 웃프게 소화하는 그렇고 그런 평범한 중년 부부가 되어가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도 된다고. 그게 보통이라고. 우리 역시 특별할 거 하나 없다고.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걸까. 섹스리스보다 손을 잡지 않는 일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럴싸하고 거창한 의미를 찾아서 괜찮은 결말을 내놓을까 싶었다가 그만두었다. 아직도 이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라 결론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문득 그의 손이 떠오른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멀게 느껴지는 그의 손. 



아직도 그의 손은 따뜻할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