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 란 Dec 11. 2024

아름다운 그대에게

세상 모든 첫사랑은 아름다워야 하니까






사람이 사람을 좋아할 때 외모가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흔히들 남자는 여자의 외모를, 여자는 남자의 성격(유머나 취향 등)을 본다고들 하는데. 정말일까? 여자도 남자처럼 동일하게 외모가 일 순위가 아닐지 심히 궁금하다. 일단 내 경우는 철저하게 외모 우선이다. 아무리 내면이 중요하다지만 시각에서 끌리지 않으면 마음까지 갈 여유는 당최 생기지 않는다. 물론 외모에 대한 취향은 제각기라 각자의 호감남녀의 정의는 자신의 지문의 문양만큼이나 다양하다는 전제조건을 두고서.



한창 연애를 시작하고 각자의 친구들을 만나면 늘 나오는 단골 질문. 000이 왜 좋아요?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모'라고 대답했고(아니 왜? 나쁜 말이 아니잖아요), 상대방은 늘 어색하게 웃었다. 그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첫인상에서 인상적인 점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었으나 반대로 얘기하면 그 외모 때문에 다른 모든 인상적인 점을 찾아낼 필요가 없었다. 잘생겼다는 말에는 설렘이 없지만 호감형이라는 말에는 은근한 두근거림이 있다. 호감: 좋게 여기는 감정. 그러니까 이 감정이 들어서는 순간 내가 머릿속에 정의 내렸던 취향과 성격은 깡끄리 사라지고 그저 호감의 대상을 둘러싼 세계만이 포장되고 반짝인다.



'꾸미는 남자는 싫어'라고 했으면서 그는 첫인상부터 꾸미는 남자였다. 물론 그 꾸미는 스타일이 온전히 내 멋과 취향에 들어맞는지는 의문이지만, 아무튼 날 것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남자를 좋아했음에도 아름다운 그가 좋았다. 똑같이 티와 청바지를 입었어도 멋을 부리는 남자와 그저 옷을 둘렀다고 느껴지는 남자가 있다. 그의 큰 키와 마른 몸은 시큰둥하게 옷을 걸쳤지만 은근한 꾸밈이 담겨 있었고, 그게 묘하게 싫지 않았다.



그러니까 똑같이 꾸몄어도 그 때문에 좋아지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싫어지는 순간이 개인의 호감이다. 그리고 첫인상에서의 호감은 바로 외모. 우리의 시각을 통해 그려지는 대상화. 내면이 어쩌고 취향이 어쩌고 해도 결국 이 날것의 하찮고 충동적인 3초의 감정이 진짜 사랑의 시작인 것이다. 서서히 물드는 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도 결국엔 그 외모가 싫지 않았음을 염두해고 하는 말. 그러니까 종국에는 외모가 좋아서 그의 운동하는 모습이 좋은 거고, 외모가 좋아서 그의 개인적인 성향도 좋은 것이며, 외모가 좋아서 그의 인생관도 좋아진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그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했나 등의 질문에 외모라고 대답하는 속물이 된다.



간질거렸던 연애의 기억이 휘발되고 그 좋아했던 외모가 매일 보는 거실의 어느 정물처럼 느껴지는 게 결혼생활의 연속이다. 내가 그 얼굴을, 그 키를, 그 피부를, 그 머리카락을, 그 손가락을 좋아했던 걸 잊게 만드는 시간들. 매일 보고 있음에도 오히려 전혀 보지 못하는 나날들. 가끔씩 저마다의 은밀한 사적인 이유로 각자를 설레게 했던 그 신체의 한 부분을 오랜 시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을 우리는 매일 여전히 마주한다.

 


그는 여전히 아름다워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애정했던 그 시선으로 그를 다시 천천히 살펴본다. 크고 두꺼운 몸이 아닌 소년 같은 몸, 비누 향기, 핸드크림이 발라진 매끄러운 손, 길고 곧은 배꼽. 변한 듯 변하지 않은 아름다운 그가 좋다. 여전히 시각적으로 호감인 나의 속물적인 사랑을 이어주는 그가 좋다. 나는 추하고 아름답지 못한 부분까지 모두 좋아해라고 말할 만큼 그를 깊이 사랑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그런 모습까지 사랑해 버린다면 그는 나에게 이성이 아니라 가족이 되고 말 테니까. 부디 오래 내 시선에서 아름답기를. 그런 그를 내가 계속 좋아하길.



나의 첫사랑은 계속 아름다워야 한다.

(단, 나는 그의 첫사랑이 아니므로 예외로 한다. 이 얼마나 다행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