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우리 부부는 결혼 10년 차를 맞았다. 사실 연애 기간까지 합친다면 16년 차이겠지만. 연애와 결혼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제 우리는 늦은 밤 집 근처 놀이터 어딘가에서 커플링을 집어던지며 '우리 헤어져'하고 빽소리치고, '응 그래' 하고 쏘 심플하게 대답할 쿨한 관계는 아니다.
좋든 싫든 우리 사이에는 우리의 못난 점 하나씩은 꼭 빼닮은 아이 하나와 각자가 하나씩 사 오거나 입양해 온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다. 그뿐이랴, 재산 분할 과정 속 누가 더 얼마나 가져갈지 날을 세워가며 결혼 초기 얼마나 가져왔나, 각자 가계 경제에 얼마나 기여를 했냐며 촘촘히 따져드는 밑바닥까지 봐야만 끝을 볼 수 있는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묶인 계약 관계다.
한 회사를 10년간 근속하면 안식월을 주기도 하는 요즘. 하다못해 포상휴가라도 받는데, 어째 결혼에서는 10년을 단순히 10주년 결혼기념일로 퉁치고 마는 느낌이 들어 밍밍하다. 사실 먹고사니즘으로 그마저도 챙기지 못하는 바쁘고 지친 보통의 부부는 그저 그렇게 9년이나 11년이나 비슷하게 넘기고야 만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1년마다 연봉 계약서를 작성한다. 근무조건과 가장 중요한 연봉을 협상하고 사인을 해서 한부씩 나눠가지는 아주 형식적인 과정을 근로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매년 반복하는데, 이 과정이 나는 언제나 새롭고 산뜻하다. 아이가 태어나던 해, 이 회사를 처음 다녔으니 벌써 8년째 근속 중이다. 워킹맘인 나에게 회사란 건 언제나 상황에 따라 변동가능한 선택값이어야 했기에 나는 1년을 잘 버티자는 마음으로 매년 그 해년도의 근로 계약서에 가볍게? 사인을 했다. 무겁고도 비장한 마음으로 오래오래 일해야지가 아닌 올 한 해만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그 가벼운 마음으로 벌써 8년을 넘게 재직 중이고 그 사이 100일의 기적도 밤수유도 업어재우던 시절도 모두 넘겼고 또 한 번의 고비라는 초등입학도 무사히 넘겼다. 1년만 보자, 올해만 보자는 마음이 얼마나 매 순간을 집중해서 최선을 다해 살게 했는지 새삼 스스로가 감격스러울 때가 있다.
결혼 앞에 계약이니 재연장이니 하는 말들이 낯설게 느껴지면 안 된다고 느낀 것도 이즈음이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한 남자라는 회사에 장기근속한 재직자가 되어있고 그 남자라는 이 근로자가 영원히 자기네 회사에 뼈를 묻을 것이라며 당연하게 믿고 있다. 왜 당연한 걸까. 계약이라는 건 한쪽이 더 이상 유지할 의사가 없으면 종결될 선량한 본연의 역할이 있는 사회적 약속인데. 한번 작성된 근로 계약서가 쭉 이어질 수 없듯이, 한번 서약한 혼인신고서가 영원히 지속되는 건 어쩐지 이상하다. 일해보니 알게 되는 회사의 민낯처럼, 살아보니 알게 되는 내 남자와 여자의 민낯들.
결혼은 신성한 것이라는 고루한 생각과,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어서 어쩌고 하는 지루한 주례 구절을 대신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10년마다 나라에서 의무적으로 이 혼인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묻는다면 어떨까? 연장할 것인가. 종결할 것인가? 신고할 시기를 둔다면 우리의 마음은 어떨까.
결혼과 동시에 평온했던 내 마음이 사실은 느슨함이 아니었는지. 그에게 은근슬쩍 의지하려는 내 경제권은 진짜 워킹맘의 고충 때문만인지. 그 역시 집에 있는 나를 대하는 마음이 너무나 당연한건지. 우리는 잠깐이라도 생각할 것이다. 어차피 이 회사를 그만 둘 마음도 이직할 마음도 없으면서, 매년 사인해야 하는 근로계약서의 서명란에서 나는 잠깐이라도 스치듯 생각한다. 그래, 이 회사가 최선이야. 이 회사만 한 데가 없지. 열심히 하자.
우리의 10년 결혼 계약은 결국 연장되었다. 이의 없음은 즉 연봉 동결 같은 말이 되어버리니까. 이 글을 쓰고 보니 계약하기 전 조항에 추가할 항목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늘 그렇듯 계약서의 사인은 지나고 나면 꼭 아쉬운 한 두 가지들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또 한 번의 10년을 잘 버텨보자고, 우리의 마흔 살이 결혼 근속을 지켜보자고. 단순하고 명랑하게 다짐한다. 다음번 결혼 계약일에는, 오십이 될 나와 오십이 넘은 그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