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벽을 깨고 나올 때마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

by Liaollet

바다는 많은 걸 주기도 하지만 이곳에 들어가면 언제든지 죽을 수도 있다. 바닷속으로 들어가 숨이 너무 찰 때는 생사를 물벽 사이에 두고 넘나드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수업을 하면 매일 같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면 죽어요. 저러면 죽어요. 이래도 죽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해지는 물속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세요."

심지어 근처도 아니고 어디론가 떠내려가 섬에서 발견된다 했다.


바다는 수영장과 다르다.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많다. 우선 날씨가 흐린 날도 있고, 파도가 거센 날도 있다. 해류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고, 바닷속 돌은 해변의 자갈처럼 보드랍지 않고 날카롭다. 스치기만 해도 물에 불어있는 피부가 찢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바다는 숨을 참고 들어가서 여러 위험한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 저승인 곳이다.


이승이나 저승이나

원래 사람들에게는 물밖이 이승, 바닷속이 저승이다. 그런데 주변을 잘 보면 이승에서도 죽어있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횟집을 지나가다 본 물고기처럼 말이다. 배를 위로 뒤집고 좁은 수조 안에 사선으로 떠있었다. 그 물고기에게는 물 안이 이승일 것이다 그러나 그 상자 안은 저승 같았다. 얼마 동안 그곳에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살아는 있지만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탁하고 텅 빈 눈은 종종 지하철 안에서 마주치는 빛을잃은 사람들과 같았다.


그중 하나일때가 있었다. 살아 있는 게 아니고 죽은 것 같은 때다. 지하철 상자 안에 몸을 넣어두고 텅 비어버린 마음은 눈에 보인다. 있고 싶지 않은 공간 속 그 벽이 아주 두텁다. 눈동자 속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음으로 죽어있는것과 같다. 이승이나 저승이나 별다를 게 없다.


해녀의 물질을 두고 저승에 가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한다. 물벽을 몇 번이고 깨보니 알겠다. 목숨을 담보로 내놓고 물속에 들어가야 된다는 것을 말이다. 숨이 차오를 때, 이 벽은 굉장히 두꺼워진다. 그다지 깊이 내려오지도 않았는데, 이러다 정말 바닷속에 갇히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머리를 물밖로 내어놓고 숨을 아주 크게 들이쉬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 든다.


"멀리 가면 안 됩니다. 부표로 넘어가시면 안 돼요."

사무국장님이 이렇게 말하면 해녀 수업을 같이 듣는 분 중 한 분이 이렇게 말한다.

"사람 심리가 그렇게 안 돼요. 하다 보면 계속 더 가고 싶지 더! 더!"

죽는다는 생각은 없고 이 정도면 바다가 사람을 부르는 게 아닐까 싶어 진다. 더 깊이 가고 싶고, 멀리 물고기를 따라 가 신기한 것들을 보고 싶어 지니 말이다. 저승이라던 물속을 이승보다도 신나게 들어갔다 나와 반짝이던 사람들의 눈이 기억난다.



liaollet_white_water_color_drawing_of_a_female_trapped_in_water_3fbec6e0-8f0c-4c34-b382-898962e27afe.png Water wall _ Liaollet


물벽과 문


상자에는 벽이 6개가 있다. 위, 아래와 네 개의 옆면들이다. 하지만 막혀있는 곳도 통로를 지나면 나갈 수 있다. 그건 바로 문이다. 이 물벽이 문과 같았다. 이승과 저승을 통과하는 문이다. 생각하기 나름으로 숨이 부족하면 이 문은 한없이 두꺼워진다. 더 깊이 내려가고 싶었을 수 있고, 몸 상태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해서 이기도 하다. 또는 조금만 더갔으면 건졌을 수 있는 소라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유들을 대도, 나가지 못하면 살 수가 없다. 그곳에 갇힌다. 수조의 물고기 꼴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자에 문을 만들면 넘어 다닐 수 있다. 두터운 물벽이던 상자던 통과하다 보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갇혀있다는 생각이 숨 막히게 했다. 하지만 여러 번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이제 바다에선 절대 못 죽겠구나라고 느껴진다. 그만큼 적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의지대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언제든 들어와서 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벽이나 문이나 모두 통과하는 것들인 데, 마음에 따라서 갑자기 두꺼워지기도 하고, 활짝 열려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미 넘나들며 살고 있다면


사무국장님은 물 밖에서 산지 오래된 우리들이 물속에서 잘 지내려면 바다의 무중력 상태를 즐겨야 한다고 했다. 사실 사람은 태아일 때 물속에서 숨을 쉬고 살았다. 탯줄은 스노클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물이라면 사람에게저승과 이승이 따로 있는 것 같진 않다. 우린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았었다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바다가 많은 것들을 주는 것처럼 삶은 많은 걸 주지만 언젠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그렇다고 죽는 게 무섭진 않다. 때가 되면 다 그렇게 되는 거니까. 사는 것도 그렇다. 때에 맞춰 알맞게 각자의 시간과 공간을 스쳐 지나가고 있다. 이미하던 대로 물 밖에서도 여러 문들을 통해 잘 넘나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저승이라지만 바다는 양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벽을 깨고 태어난다는 기분은 몇 번이고 느꼈으니 말이다. 저승과 이승은 별다를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