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고래와 함께 춤을

물속의 각도

by Liaollet

한국에서 배운 미술 입시의 목적은 대학을 '잘' 들어가기 위해서다. 남들이 세워놓은 '잘'이라는 기준을 향해 경쟁했다. 무엇을 바라는지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였다. 그 결과 작품을 완성해 냈을 때, 온전한 즐거움이 있었는지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했다. 어떠한 이유로 창작을 하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껍데기

코로나로 힘든 시기였지만 이탈리아 디자인 유학을 마치고, 파리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 해녀학교를 다녔다. 밖을 나가 디자인 공부보다 의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왜' 창작을 하는 지에 대한 즐거움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은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을 즐겼다. 새로운 생각을 보여주는 자체를 즐거워했다. 그 사이로 내 것은 그럴듯해 보였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영혼이 없는 껍데기라는 것은 스스로만 알았다. 기술적인 결과가 창작이 아니었다.


어느 날 멕시코 친구와 프로젝트에 대해 말을 나눌 때였다. 스토리 텔링도 좋았고, 결과물도 언제나 흥미로웠다. 항상 이 방법이 궁금했다. "에드왈도 너는 어떻게 항상 네가 원하는 것에 가깝게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라고 물어보았다. "씨앗부터 심어, 사과를 얻으려면 그것부터 해야 하잖아." 이 대답을 듣고는, 씨앗을 심기도 전에 얻을 결과만 골똘히 생각하던 걸 떠올렸다. 왜 이것을 심어야 하는지, 어떤 과일을 수확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빠져있었다. 나의 빨갛고 반짝이는 사과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삶의 각도


여전히 과정을 즐기지 못하는 것에 지쳐있었다. 그러나 해녀학교 단체티를 만들때는 마음이 밝아졌다. 좋아하는 일은 마음이 간다. 다양한 시안을 만들었고, 그중 파도고래와 함께하는 해녀의 입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이디어의 영감은 해녀와 스킨스쿠버의 차이였다. 둘의 흥미로운 다른 점은 몸의 입수 각도이다. 해녀는 몸을 바로 90도로 숙여서 들어간다. 물 표면에서 물속을 살펴보다가, 목표한 지점으로 바로 닿기 위함이다. 이렇게 순간적으로 깊게 들어가는 것을 덕다이빙이라고 한다. 강가의 오리가 물속으로 쏙 사라지는 모습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스쿠버 다이빙은 장비를 이용해 천천히 들어간다. 기압차를 서서히 느끼며, 물고기도 구경하면서 내려가기 때문에 비스듬히 누운 각도로 입수한다.


놀라운 점은 원하는 바가 몸의 각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바닷속 경험은 실체가 없으나 어떤 경험을 원하느냐에 따라 몸의 각도로 나타난다. 삶을 살아내 가는 방식도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느냐에 따라 원하는 바가 보인다. 그 시선의 각도가 바다에서는 몸의 각도인 것이다. 목표한 바로 곧장 들어가는 그 확고함이 좋았다. 그래서 물속에서 수직으로 내려가는 것만큼 해녀를 잘 나타낼 모습은 없었다고 여겼다.


해녀학교 단체티 제작 참고 이미지


파도고래가 함께였으면 하는 바람

고래는 폐로 호흡을 한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물에 나와 숨을 쉰다. 올라왔을 때는 산소를 조직 구석구석으로 보내 가득 채운다. 이런 점이 해녀와 닮았다 느꼈다. 그리고 해녀가 맞닥뜨리는 위험 중 파도에서의 안전을 바라고 싶었는데, 고래가 지켜주는 존재로 보이면 좋을 것 같았다. 파도의 형상을 한 멋진 고래 이미지를 찾아냈다. Caitlinlm에게 인스타로 연락해서 이 도안의 사용이 가능한지 물었다.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이들의 안녕을 바라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하니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그렇게 이 파도 고래와 수직으로 입수하는 해녀를 일러스트로 그려 단체티 도안을 만들었다.


2022 해녀학교 입문반 단체티

거센 코로나라는 파도가 한창일 때, 많은 사람들이 힘겨웠다. 모든 게 안된다는 사실에 갇히고 싶지 않아 그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 같다. 이 속에서도 기회를 찾고, 시도해 본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모든 게 멈춘 것 같은 시간일 때, 바다를 건너 해외로 나갔고, 파도에 휩쓸려 삶을 수영하는 법을 배웠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물 위의 현실을 힘주지 않고, 이를 맞서기보다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물 밖은 코로나로 시끄러웠지만, 물속은 굉장히 고요했다. 이 속에서 시선과 목표를 달리해서 시간을 보내려 했다. 너무 진지하게 현실의 파도를 맞받아 치는 것보단 파도고래와 함께 춤을 추는 편이 즐거웠다.


liaollet_white_water_color_drawing_of_a_female_swimming_with_wh_4218b5d5-064a-4e5b-abf6-1a4630003c3a.png Dancing with wave whale _ Liaollet


모든 게 지나가길

All waves eventually pass - K.tolne


모든 파도는 결국 지나간다. 코로나도 처음에 비하면 잠잠해져가고 있는 중이다. 파도가 거셀 땐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물속으로 피하는 방법이었다. 무엇이든 '왜'와 시선의 각도를 의식하는 노력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또 아무래도 방법이 없다면 과정을 즐기며 그렇게 흘러가도 괜찮다. 바다는 원래 알 수 없는 곳이다.


마음속으로 한 표는 더 찍었던 시안이었는데, '파도고래와 함께 춤을' 시안으로 결정 됐다. 은희 님과 함께 디자인을 하고, 제작에 힘써주신 직업반 부회장님 덕에 의미 있는 해녀학교 단체티를 만들 수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해녀 학교 분들의 칭찬에 고래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Caitlinlm 캐나다에 퀘벡주 몬트리올에 거주하고 동물과 꽃, 식물 타투를 제작하고 있다.

파도고래는 2016년에 만들어진 도안인데 이렇게 사용되는 걸 보면 그림의 힘은 신기하다.

이 도안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Caitlinlm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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