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우리 아이보약 <귀룡탕>
딸아이는 절로 컸다. 알아서 컸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생각할 겨를 없이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느 새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딸 아로에게 나는 바라는 것이 크게 없다. 그저 건강하고 평범하고 풍요롭게 살길 바랄 뿐이다. 인생에서 비극만 없길 바란다.
평범하게 크길 바라면서 평범하게 키우진 못했다. 아로는 100일 즈음 할아버지 병문안을 갔고 돌도 되기 전에 내 등에 업혀 구로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에서 의료봉사를 함께 했다. 아기일 때부터 병원 방문이 익숙했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에서 의료봉사를 할 때엔 둘째를 임신 중이었다. 그러니 아로를 업고 있던 나로서는 소위 '배 부르고 등 따신' 상황이었다. 당시 모습을 찍은 사진은 몸은 힘들었어도 뿌듯했던 시기였고 그래서 의미 있는 사진이다. 예전에는 임신한 나만 눈이 갔는데 지금 보니 업혀 있는 아로도 함께 고생했구나 싶다.
아로는 동생 노아에 비해서 자주 아팠다. 알러지 체질이라 모든 면에서 취약했다. 온 가족이 똑같이 새 집으로 이사 갔는데 1살 어린 동생은 멀쩡한데 아로는 얼굴이 무섭도록 벌겋게 달아올랐다. 비염과 기침 외에 가벼운 피부질환까지 두루두루 겪었다.
그래서 아로의 처방은 보약처방보다는 치료한약 처방이 대부분이었다. 보폐탕, 황련해독탕, 온청음, 사육탕, 가미지황탕 등등. 내가 아파봐서 내원하는 환자분들 마음을 이해하듯이, 아로가 자주 아프다 보니 아파서 오는 아이들을 보면 아이도 측은하고 엄마도 측은했다.
그런 아로도 초등학교를 가게 된 이후부터는 치료한약이 아닌 보약을 먹게 되었다. 어느 날 보니 남편이 아로에게 <귀룡탕(歸龍湯)> 처방을 내린 것이다. '야제증'으로 한동안 <가미온담탕>을 먹다가 <귀룡탕>을 먹게 된 아이, 아토피 치료처방인 <백호인삼탕>을 졸업하고 <귀룡탕>을 먹게 된 아이 등 나로서는 아이들이 귀룡탕을 먹게 되면 치료가 필요한게 아니라 몸을 보해 건강한 상태를 유지 또는 더 건강해지게 하는 단계에 진입한 거 같아서 괜시리 안도가 된다.
가끔 "우리 아이 한약 안먹어도 되지요?"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어디 아픈데 없지요?라는 뜻이지만 그게 '네. 한약 안먹어도 됩니다'와 동격이 되기엔 무리가 있다. 한약은 '보약(補藥)'이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부족한 부분을 보하는 약이라는 뜻이며 질병이 있고 난 후의 치료약의 개념이라기보다 '미병(未病)' 단계에서의 예방관리차원에서 먹는 것이다. 즉, 보약은 예방의학개념인 것이다.
어르신들의 <십전대보탕>처럼 아이들의 <귀룡탕>도 그런 차원에서의 보약이다. 보통은 아파서 한의원에서 오는 아이들이 <귀룡탕> 처방으로 진입하게 되면 내가 다 기쁜 것도 그 차원이다.
귀룡탕(歸龍湯)은 '당귀(當歸)'와 '녹용(鹿茸)'의 '귀'와 '용'을 따서 만들어진 처방명이다. 예전에는 당귀와 녹용만 처방했을 터이나 요즈음은 아이들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약재를 더하고 뺀다. 아로의 귀룡탕에는 녹용, 당귀, 용안육, 구기자, 진피, 황기밀구, 백출, 복령, 산약, 목향, 사인, 오미자, 감초가 들어갔다.
여기 약재, 모두 국내산 쓰시는 거죠?
믿고 내원하시는 와중에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약재는 식재료처럼 신토불이가 100% 맞아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녹용이 특히 그렇다. 국내산 녹용은 꽃사슴이다. 녹용의 제대로 된 기운을 느끼자면 러시아산이 좋다. 러시아산을 으뜸으로 친다고 하여 으뜸 원을 사용하여 원용(元茸)이라고도 한다.
녹용은 또한 부위가 중요한데 뿔의 10%를 차지하는 분골, 20%를 차지하는 상대 부위가 좋다. 따라서 홈쇼핑에서 웅장한 뿔을 보여주며 "이걸 통째로 넣어 달였어요!"하며 흥분하는 목소리에 같이 흥분하면 안된다. 중대와 하대를 포함한 아랫것들'을 분골, 상대와 같은 '윗분들'과 한데 취급하기에는 그 약성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영하 30도 이하의 환경에서 힘차게 뛰노는 야생의 사슴을 상상해보자. 머리를 뚫고 나와 가지처럼 피어나는 뿔은 양기의 충만함을 시각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녹용은 허약체질 아이의 기와 혈을 보해주고 폐의 기운을 도와준다.
딸아이는 항상 어지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밥도 가리지 않고 먹기보다는 입에 물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폐가 좋지 않아 숨소리가 거칠고 코피를 자주 흘리는 등 밥 안먹고 허약체질의 아이가 갖고 있는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래서 면역력을 강력하게 올려주는 녹용 외에 비위를 개선하고 입맛을 돋게 하는 백출, 복령, 목향 등의 약재가 더해졌다.
엄마, 나는 한의사가 될 거야.
어느 날 아로가 한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한 번도 한의사 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왜 한의사가 될 생각을 했냐고 물어보니 "우리 한의원 보면 대를 이은 한의원이라고 써져 있어서요. 제가 한의사가 되어야 대를 잇쟎아요."
아로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많은 아이라 의료인이 적성에 맞긴 하다. 어릴 때부터 문병 차원에서의 병원 방문이 잦은 편이었고 커서도 할머니 휠체어는 아로 몫이다. 아이의 꿈을 이루는데 체력이나 질병이 발목 잡지 않기를 바란다. 건강이 받쳐줘야 꿈도 이룰 수 있다. 각자의 영역에서 용이 될 아이들, 아니 용 안되어도 되니 귀룡탕 먹고 별 탈 없이 자라길.
별 탈 없이 자라는 것이 용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