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쟁이 아들을 위한 처방 <억간산>
우리 한의원이 자리 잡은 곳은 신도시라 아기들이 많다. 출산율 저하로 소아과 산부인과가 안 된다던데 이 곳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소리다. 한의원에도 아기들이 많이 오는데 정말이지 남의 아기는 왜 이렇게 예쁜지. 그리고 다들 어쩌면 그렇게 순한지 모른다. 그러나 엄마 앞에서 아기가 순하다고 하면 다들 서운해 하므로 가능한 삼가는 것이 좋다. 자고로 아기는 밖에서는 순하고, 잘 때만 천사같은 존재이니까.
야들야들한 아기들을 보다가 우리 아이들을 보려니 너무 컸다. 11살, 12살이니까 아직은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부쩍 컸다. 아기일 때엔 언제 키우나 했는데, 지금은 좀 천천히 컸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아니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가면 많이 이뻐하면서 잘 키울 수 있을 텐데 하는 후회도 있다. 그 땐 정말 너무 힘들어서 이쁜 줄 모르고 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릴 때 사진을 보니 이게 왠 걸, 아들래미의 만행이 사진 속에 남아 나의 조작된 기억을 교정시켜 준다. 그랬지, 저렇게 우유 쏟고, 분유 쏟고, 돈 자르고, 커피믹스를 다 잘라댔지. 아냐 아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고개를 흔들며 아기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확 털어낸다.
아기 땐 철 모르는 아기라 그렇다 치자. 11살인 지금도 아들래미는 여전히 산만하다. 병적인 수준은 아니지만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별명이 '흘림이'다. 항상 무언가를 흘리고 깨뜨리고 부딪힌다. 과잉행동장애(ADHD)까지는 아니지만 '남자애가 그렇지 뭐'라고 넘길 수준은 아닌 상태인 건 사실이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몰입도'는 크지만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집중도'는 떨어진다. 아이들이야 어느 정도 산만한 것이 정상이긴 하다. 산만한 정신 속에 창의성, 독창성의 씨앗이 싹트고 피어날 수 있다. 다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어느 정도의 질서도 배워야 하는 시기에서는 산만함을 통제할 필요도 있다.
최근에는 ADHD 진단이 많아진 것 같다. 약의 기전은 아이들을 얌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 약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아이의 놀라운 상상력, 창의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의 질서를 찾는 접근이 중요하겠다.
아들래미는 정신이 없다. 남편에게 장난조로 “약 좀 먹여야겠어.”했더니 그렇잖아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곧장 처방에 착수했다. 아들래미는 건강체질에 타고난 체력이 좋아서 몸이 아파서 먹는 처방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엄마로써 아들의 약을 직접 달일 준비를 하고 남편의 조제를 기다렸다. 비장하게 약재실로 들어와 조제하는 남편, 개구쟁이 아들을 위한 처방은 “억간산(抑肝散)”이었다.
“간뎅이가 부어서 산만한 거야?”
억간산(抑肝散)? 간을 억제한다는 뜻인가? 그럼 간뎅이가 부어서 산만한거야? 그렇다고 한다. 산만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성급한 성질은 간에 열이 있거나(간열, 肝熱), 심장에 열이 있는 경우(심열, 心熱)란다. 산만한 아이들의 경우 간이 부었다기보다 '간이 뜨거운 것'이라 하면 되겠다. 이러한 간의 기운(간기, 肝氣)을 평정하여 차분하게 유도하는 처방이 억간산이다.
조제된 억간산에 특이한 약재가 있었으니 바로 '조구등(釣鉤藤)'이었다. 조구등은 약재의 모양이 특이하다. '조구(釣鉤)'는 낚시바늘을 뜻하는데 약재의 생김대로 이름이 지어진 케이스이다. 서늘한 성질로 간의 열을 식히고 부작용이 없어 아이들 처방에 좋은 약재이다. '얘야, 좀 진정하렴.' 하고 얼르고 다르는 진정약재라 생각하면 된다. 가시가 많은 부위에 약효가 많은데 오래 끓이면 약효가 떨어져서 15분 이하로 달여야 한다. 따라서 다른 약재를 넣어 달이다가 조구등은 마지막 15분 전에 넣어 달여야 한다. 그래서 더 신경 써야 하고 약 달이는 데 좀 더 품이 들어간다.
억간산에는 조구등 외에 당귀, 백출, 복령, 천궁, 시호, 감초, 용골, 모려, 진피, 박하가 들어간다. 조구등과 시호는 진정작용을, 백출과 복령은 이뇨작용을 한다. 당귀와 천궁은 혈관을 확장하여 뇌혈행을 개선한다. 억간산은 아들래미처럼 산만한 증상 외에 틱 장애, ADHD 등에도 쓰이는 처방이다.
아빠가 처방하고 엄마가 - 정성껏이라기보다는 이를 갈며 - 달인 억간산을 먹고, 아들래미는 산만함이 가시긴 했다. 그 집중력의 화력이 공부보다는 공룡 만들기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아기 때 커피 쏟아졌던 바닥과 지금은 다를 바 없긴 하다. 억간산은 '모자동복(母子同腹,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복용)'을 권하는 처방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를 딱히 밝힐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저 바닥을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