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가 달인 장모님 한약
코피야 멈추어 다오

코피를 멈추게 하는 <서각지황탕>의 비밀

by 리아

친정엄마가 동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광역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코피가 쏟아졌단다. 천만다행으로 동탄을 벗어나기 바로 직전에 코피가 나서 기사님이 근처 대학병원에 내려주셨다고 한다. 엄마는 한번 코피를 쏟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편이라 광역버스를 타고 그대로 갔으면 이도 저도 못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 했다.


“장모님, 서각지황탕을 달이자.”


"지금? 지금 한약을 달이자고? 지금 달여서 어느 세월에?"


성질 급한 나는 코피가 쏟아지는 마당에 한약을 달이자는 남편을 멍하니 쳐다봤다(애정 어린 눈길은 전혀 아니었을 것이다).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조제를 시작했다. 대팻밥처럼 돌돌 말린 한약 약재를 약 보자기에 담는다. 그 약재의 정체는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서각'으로 코뿔소의 뿔이다. 3시간은 달여야 하는데 이걸 언제 달여서 엄마한테 전달하나 싶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일단 약을 달였다.


틈틈이 엄마와 통화를 했는데 응급실이라고 딱히 응급처치가 있는 것은 아닌 듯 했다. 오히려 방치된 느낌이랄까. 놀랍게도 그리고 우습게도 엄마 한약을 가지고 응급실로 갔을 때까지 특별한 처치는 없었다. 그저 얼음만 대고 있었을 뿐.



엄마는 사위가 처방한 한약을 먹고 집에서 우리 집에서 안정을 취했다. 한약의 처방은 나름의 네이밍 원리가 있는데, 주된 약재를 처방명에 붙이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복용한 <서각지황탕>의 주된 약재는 '서각'과 '생지황'이다.


앞서 말했듯이 서각은 코뿔소의 뿔이다. 성질이 아주 차서 지혈제만이 아니라 해열제, 해독제로 좋다고 한다. 다만 코뿔소가 멸종 위기종으로 보호 받고 있어 약재로서의 수입은 금지되어 있다. 한마디로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약재다. 그런 서각이 어째서 우리 한의원에 있는 걸까?


사연은 이렇다. 한약방을 하셨던 아버님께서 그 옛날, 서각 확보에 욕심을 내신 나머지 - 라고 쓰고 좋은 약재확보에 대한 열정이라고 읽자 - 궁리 끝에 코뿔소의 뿔로 만들어진 '활'을 구매한 것이다. 언제 귀하게 쓰일 지 모르니 보관하자며 그 뿔을(활을) 갈아 보관했고,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유품이 된 서각이 우리 한의원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젊은 시절 활을 갈아 서각을 보관하실 때만 해도 먼 훗날 안사돈의 멈추지 않는 코피를 멈추게 하는데 요긴하게 쓰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교. 아교는 흔히 알고 있듯이 풀이자 접착제이다. 마치 비즈공예의 구슬처럼 생긴 아교는 손끝에 물을 묻혀 만져 보면 끈적끈적해진다. 이런 접착의 성질이 약재로 사용될 때에는 지혈을 역할을 하여 아교는 잦은 코피, 멈추지 않는 코피 등에 쓰인다.


서각과 생지황, 목단피는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고 아교는 지혈작용을 하는 것이다. 서각은 지금은 구하기 어렵거니와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다. 그저 예전에는 코뿔소의 뿔을 약재로 썼다는 흔적을 <서각지황탕>이라는 처방명에서 확인할 뿐이다. 지금은 서각지황탕에 서각이 들어가진 않고 물소의 뿔인 '우각'으로 대신한다. 단, 용량은 서각의 10배 가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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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공예의 구슬처럼 동글동글한 약재 '아교'는 끈끈한 성질로 코피를 멈추는 처방에 쓰이기도 한다.

코피가 멈추지 않는 응급상황에 한약을 달이고 있다는게 일견 미련하게 느껴졌지만 결국 엄마의 코피는 멈췄다. 멈췄을 뿐 아니라 이후엔 코피로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한번도 없다. (엄마는 코피로 자주 응급실 신세를 졌고 레이저로 지지는 등의 처치를 받곤 했다)


코뿔소는 자신의 뿔이 활이 될 거라곤 몰랐을 터이고, 그 활을 갈아 서각이라는 약재로 만든 아버님은 훗날 코가 약한 안사돈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 못하셨을 것이다. 일상의 먹거리도 기원을 찾자면 감사함과 미안함 투성이듯 자연에서 취하는 약재 또한 그러하다. 이름 모를 코뿔소와 아버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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