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외할머니 장례식에 웬 생일축하노래?

외할머니 골절엔 뼈를 붙게 하는 <당귀파혈탕>

by 리아

“땡일 추카합니다~ 땡일 추카합니다~ 따랑하는 하머니~ 땡일 추카합니다~”


맙소사! 혀 짧은 목소리의 뜬금없는 생일 축하 노래가 외할머니 장례식(!)에서 또랑또랑하게 울려 퍼졌다. 그 어이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3살이었던 나의 아들이었다.

외할머니는 100세를 꽉 채우고 돌아가셨다. 국화꽃이 채워진 곳에 촛불이 켜져 있으니 촛불이라곤 생일 케이크에서만 본 3살짜리 아들 입장에서는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 후~! 하고 꺼야 하는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아들내미는 노래를 부르고 급기야 촛대의 불까지 끄고 말았다. 3년의 경험치로서는 아이에겐 그게 최선이었을 터.


아아 이 천진난만함이여. 동시에 생과 사는 여기에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승에서는 100세이시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처음 맞는 생신이기도 하였을 터. 천지를 분간할 줄 모르는 3살 꼬마는 어쩌면 천지의 조화를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장례식에 울려 퍼진 생일 축하 노래라니!


외할머니는 경상도 남자 못지않은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나도 애교가 없고 무뚝뚝한 편이고, 나의 딸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게 모두 외할머니로부터 도도히 흐르는 유전자인가 보다. 여느 할머니에게서 느낄 수 있는 푸근함, 따듯함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말씀을 살갑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셨던 것이다. 친구들 할머니들은 손주들이 오면 “아이고, 우리 강아지~~”하신다는데 나는 강아지 취급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외할머니는 평생 소식을 하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이는 일상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잠이 많은 나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서 늦게 일어나거나 낮잠을 자거나 했는데, 그럴 때마다 소가 된다며 혼났던 기억이 난다. 소식, 규칙적인 습관, 마음의 비움, 욕심 없음 등이 장수의 비결이었을까.


그 세대의 여인들이 그렇듯이 외할머니의 삶도 사연이 많았다. 믿음직한 맏아들을 앞세우고, 잘생기고 똑똑한 아들은 사고로 불구가 되고, 예쁘고 총명했던 친손녀를 잃는 등 마음에 새겼다면 한으로 남아 마음을 할퀴었을 상처들이 많다. 어쩌면 그 모든 슬픔을 ‘일이 보배다’라며 소처럼 일만 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 세대의 경상도 어르신이 그렇듯 외할머니도 아들과 친손주가 최고였다. 딸과 외손주는 말 그대로 바깥(外)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90세가 넘어가시니 - 아니, 90세가 넘어서야! - 남녀 구별이 없어지며 딸들인 친정엄마와 이모와도 함께 삶을 즐길 줄 알게 되셨다. 당시에는 너무 늦게 인생의 즐거움을 찾으셨다 싶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나마도 다행이었다.


친정엄마와 함께 외할머니의 친정을 찾아간 적이 있다. 외할머니의 친정은 매우 깊은 산골짜기였다. 거리 상으로는 얼마 안 되는 거리였는데 꽃다운 나이에 시집간 할머니는 주름이 자글자글 해서야 지금은 아무도 없는 친정을 구경하실 수 있었다. 수십 년 만에 친정을 방문한 할머니는 만족해하셨다. 그즈음부터 할머니 얼굴에 기쁨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좋은 것은 좋다, 즐거운 것은 즐겁다고 표현하셨다. 남편과 함께 외할머니를 모시고 강원도에도 놀러 간 적이 있는데 할머니 기준에서 '바깥(外)' 인물들인 딸, 외손녀, 외손녀 사위, 외증손주들과 함께 한 그 여행에서 할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전서방! 고맙네!”


단지 그 한마디였지만 나는 알고 있다. 할머니의 무뚝뚝한 성격에 그만하면 매우 자랑스럽고 뿌듯하고 고마운 감정의 표현이었음을. '처 외가는 남'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었을 할머니께 당신을 챙기는 손녀사위가 기특하셨을 게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던 어르신들이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하게 되는 여러 사건 중의 하나가 ‘낙상’이다. 외할머니 역시 화장실에서 넘어지셨고 그 길로 일어나기 힘들어지셨다. 완고한 성격이라 고령에도 혼자 사실 것을 고집했지만 낙상으로 인한 골절 이후엔 방법이 없었다. 그 길로 입원을 하시게 된 것이다.


외할머니는 고관절 골절로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때 남편이 외할머니에게 내린 처방이 바로 <당귀파혈탕(當歸破血湯)>이다. '파혈(破血)'이라 함은 어혈을 파(破)한다는 뜻으로 낙상, 타박상으로 생긴 어혈(나쁜 피, 뭉친 피)을 없앤다는 뜻이다. 처방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당귀'가 들어가는데 할머니 처방에는 당귀의 꼬리에 해당하는 '당귀미'를 썼다. 당귀의 몸통에 해당하는 당귀신(當歸尾)은 보혈 작용을 하는 반면, 당귀미(當歸尾)는 어혈을 풀어주는 파혈 작용을 한다. 당귀파혈탕엔 당귀미, 홍화, 도인, 소목, 택사, 천궁, 목단피, 반하, 진피, 복령, 감초, 생강과 같은 약재가 들어간다.


남편이 약재를 얼마나 많이 넣었는지 약 보자기가 묵직했다. 당귀미, 홍화, 소목은 어혈을 풀어주고 감자를 썬 것처럼 둥글둥글한 모양의 택사는 혈행을 개선하여 노폐물을 배출한다고 한다. 손녀사위가 지어준 한약을 기꺼이 드셨지만 노환과 더불어 할머니는 쇠약해지셨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 계셨을 때 아들, 딸, 손주들의 병문안을 받으며 마지막이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할머니의 장례식은 축제였다. 이청준 소설의 제목처럼 축제(祝祭)이자 festival로서의 축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권말란(100세)이라 적힌 화면이 보였다. 성함 옆엔 자녀와 손주, 손주며느리와 사위의 이름이 화면을 바꾸며 보여지고 있었다. 정말 꽉 찬 인생, 다복한 인생, 호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와중에 나는 외손이라고 나와 남편의 이름은 보여지지 않았다. 괜찮아. 내 이름과 남편 이름이 적힌 화환이 있으니까!


여러 번 화면이 바뀌어도 외손녀인 나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화환으로 외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설 당일 새벽에 돌아가셔서 집안 모든 식구들이 모였을 때 할머니가 작별인사를 하신 셈이 되었다. 장례식장은 하나의 커다란 집안모임이 되었다. 나처럼 손녀라 명절에 못오곤 했던 여자들이 모두 한달음에 시댁에서 달려왔다. 이렇게 모두 한자리에서 만난 건 너무 간만이라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처럼 생각되었다.


당귀(當歸). 마땅할 당, 돌아갈 귀로 '마땅히 돌아갈 곳으로 돌아가다'라는 뜻을 갖고 있는 약재이다. 흘러야 할 피가 멈추고 고여 어혈이 되었을 때 어혈을 풀고 마땅히 갈 곳으로 다시 흐를 수 있도록 한 <당귀 파혈탕> 처방이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드신 한약이 되었다. 그로 인한 통증 없이 마지막이 편안하셨음에 위안을 삼는다. 100세 장례식을 1세 생일로 만든 외증손의 노래와 함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 할머니의 평안을 기도한다.


장례식장에서 노래 부르고 촛불 끈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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