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불면엔 야합탕(夜合湯)
내가 이 사람하고 결혼해서 이렇게 개다리 붙잡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시외삼촌(남편의 외삼촌)은 서산에서 동물병원을 하는 수의사이시다. 수학교사였던 시외숙모는 결혼 후 교사직을 관두고 외삼촌과 함께 동물병원에서 일하신다. 우리가 놀러 갈 때면 ‘내가 이렇게 개다리 잡고 있을 줄 몰랐다’고 농담조로 이야기하시곤 한다.
가을만 되면 서산에 가서 외삼촌 내외와 아귀찜 먹고 꽃게 선물 받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어느 날은 문득 두 분 일하시는 것을 보고 싶어 아이들이 멍멍이와 야옹이 보고 싶어 한다는 핑계를 대며 방문한 적이 있다.
오늘은 공휴일이라 강아지가 한 마리밖에 없는데...
강아지는 아파 보이는 곳 없이 멀쩡했다. 아파서 온 게 아니라 이발하러 온 거다. 조금 있으니 누군가 개사료 있는지 문의. 미용실에서 마트 같은 느낌으로 견학이 시작되는 거 같더니 곧이어 커다란 개가 등장했다. 교통사고를 당했단다. 외삼촌은 짖어대는 개의 입에 자갈을 물리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셨다. 와중에 생후 1개월 된 강아지가 와서 예방접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는 급하게 산모(?)가 왔다. 시외삼촌은 제왕절개를 행했는데 이미 뱃속에서부터 죽어 있던 새끼가 나왔다. 외삼촌은 죽은 새끼를 상자에 잘 담아 주인에게 건넸고 엄마 개는 링거를 맞은 후 돌아갔다.
반려견 미용실에, 약국에, 교통사고 환자 응급실에, 소아과 의사에, 산부인과에 장의사까지! 마치 전천후 변신로봇을 보는 듯했다. 동물병원도 상업적이 되려면 끝이 없을 건데 동물을 사랑하는 외삼촌은 치료를 위해 다방면으로 공부를 하시는 분이었다. 동물병원이 이렇게 바쁜 곳임은 미처 몰랐다. 여러 변수와 상황 속에서도 침착하고 꼼꼼하게 처치를 하시더라.
캔디 캐릭터인 외숙모는 항상 웃는 얼굴에 하이톤으로 분위기를 밝고 명랑하게 만드신다. 외숙모는 밝은 캐릭터인 반면, 외삼촌은 차분하고 섬세하다. ‘섬세함’은 ‘예민함’과 연결된다. 그러한 성향은 말도 통하지 않는 동물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는 필요한 기질일 터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 신경성이 많으시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불면증도 갖고 계신 듯하다. 몸도 간지럽다 하셨다. 이렇게 심신의 균형이 흔들리며 몸에 사인이 나타나면 우리에게 한약을 의뢰하신다.
남편이 조제한 외삼촌의 약과 처방전을 보는데 처방명이 특이하다. 야합탕이란다. 야합탕? 공자의 부모님이 야합(野合)해서 공자를 낳았다던데 그때 그 야합? 야합이 대체 무슨 뜻일까. 야합탕의 처방약재도 남다르다. 야교등, 합환피, 상심자, 서장경. 마치 무슨 한시나 독경 읽는 느낌이다. 남편에게 야합탕에 대해 물어보니 외삼촌의 ‘불면증’과 ‘소양증(간지러운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처방이라고 한다.
야합탕(夜合湯)은 주로 불면증에 쓰이는 처방으로 ‘들 야(野)’가 아니라 ‘밤 야(夜)’였다. 말 그대로 ‘밤을 껴안는다’는 뜻이렸다. 나는 잠이 많은 편이라 불면의 고통을 도저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내원하는 환자들을 보건대 불면은 우울증과 동반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모나 배우자 등 가족을 잃었을 경우와 같은 극도의 스트레스도 불면을 야기한다. 생각이 많으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지 않나. 불면은 신경과 관련되어 있다 하겠다.
야합탕에 처방되는 ‘합환피’는 흔히 보는 자귀나무의 껍질을 말한다. 자귀나무의 입은 양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낮에는 붉은 꽃이 화사하게 피고, 밤이 되면 마치 입술을 다무는 것처럼 서로 포개진다. 그래서 부부간의 금슬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걱정 근심 없는 나무, 함께 기뻐하는 나무라 하겠다.
합환 피와 함께 처방되는 ‘야교등’은 적하수오의 줄기를 말린 것이다. 주로 소음인에게 맞는 약재로 소심하고 예민하여 신경질적인 사람에게 좋다. 마음을 안정시키며 불면증에 효과를 보인다. 실제로 외삼촌은 불면과 소양증을 호소하셨는데, 야교등은 피를 보태는 보혈 작용으로 거친 피부를 매끄럽게 한다. 소음인은 특히 피부 간지러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상심자’는 또 뭔가. 상심했다는 말이 아니다. 상심자는 뽕나무 열매, 즉 오디 말린 것을 말하는데 그 효과는 적하수오와 비슷하다. 신경이 과민한 사람이 먹으면 좋다. ‘서장경’ 역시 신경쇠약과 마음을 안정시킨다.
외삼촌의 야합탕은 신경을 어루만져 불면을 개선하고 진액을 보태 피부도 매끄럽게 하는 처방이다. 작은 공간에서 말 못 하는 생명의 여러 상황을 다뤄야 하려면 예민하고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여야 할 것이다. 그로 인한 수면장애에 야합탕은 편안한 잠을 안내할 수 있다.
모든 색깔을 흡수하는 검은색처럼, 온갖 번뇌와 고민과 걱정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 밤엔 그 밤을 껴안고 모든 것을 품고 덮을 일이다. 불면은 결국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관건일 터. 마음이 내 뜻 같지 않아 잠 못 이루는 밤, 밤을 끌어안아 깊은 수면으로 인도하는 야합탕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