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안 자는 우리 아기, 야경증엔 자장자장 가미온담탕

by 리아
어머님, 저는 셋도 모자라요. 다섯은 낳을 거예요.

어머님 마음에 쏙 드는 며느릿감은 아니었겠으나 아마도 저 말은 어머님 마음에 흡족하셨던 모양이다. 내가 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어머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하시는 것을 들었으니. 의도한 바는 아니었고 당시엔 진심이었다. 나는 아기만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해서 여행 때 찍은 사진을 보면 풍경보다 여행지에서 만난 아기들과 찍은 사진이 더 많다. 아기라는 존재는 어쩜 그렇게 예쁠까.


그러나! 막상 엄마가 되어 보니 아기라는 존재는 귀염성으로 무장을 해야 할 만큼 통제 불가능한 에너지 덩어리였음을 알았다. ‘생명이 있는 알람시계’라고 할까. 아기들의 울음소리는 그 음역대가 남다르다. 나는 연년생으로 남매를 낳았는데 아이들 어렸을 때를 떠올리면 늘 잠을 못 자 피곤했던 기억만 먼저 난다. 졸리면 자면 될 건데 왜 잠투정을 할까. 신생아는 잠만 잘 거라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예뻐한 모든 아기들은 나와 3분 이상을 함께 한 적이 없었다.


한 번은 딸아이가 자지러지게 울어서 그 밤에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있다. 그런데 응급실 의사의 태도가 충격적이었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애가 이렇게 넘어갈 듯 우는데 정말 아무 이상 없는 거냐는 나의 질문에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럼, 아기한테 수면제라도 먹일까요?


경험 없는 엄마들이 아기 우는 것으로 응급실에 오는 경우가 많을 터이고 그 의사에게는 일상이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같은 엄마들이 많았겠지. 그래도 말 한마디 따스하게 함께 걱정해주고 괜찮다고 하면 좋지 않았을까. 의술과 화술을 함께 갖춘 의사가 되기란 아무래도 힘든 걸까.




병적인 이상은 아니지만 울음으로 불편함을 필사적으로 알리는 아가들. 한방에서는 밤에 발작적으로 놀라고 우는 증상을 ‘야제(夜啼)’라고 한다. 밤에 놀란다고 하여 야경증(夜警症)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Night Terror라고 하는데 영어의 뉘앙스가 더 직접적으로 와 닿는다.


정말이지 이건 테러다. 야제는 밤 12시를 기준으로 상반야(上半夜), 하반야(下半夜)로 나누는데 상반야인 경우는 심열(心熱)이 약한 경우, 즉 심장이 약한 경우이고 하반야는 배앓이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름의 불편함이 있어서 우는 것이고 한방에서는 이러한 아가들을 위한 좋은 처방이 많다.


2012년이었다. 단아한 인상의 엄마가 다소 찌푸린 인상의 아기를 안고 내원하셨다. 아기 이름은 조정연. 눈이 크고 굉장히 예쁜 얼굴이었는데 표정은 밝지 않았다. 예민한 아기라 한의원 특유의 한약 냄새가 거슬렸을 것이다. 남편이 진맥을 해보니 이 아기는 ‘상반야’와 ‘하반야’가 함께 있었고 면역력도 약한 데다 알레르기 소인까지 있었다.


아기가 나의 아들과 동갑이라 그 엄마가 남 같지 않았다(결국 지금은 '우리가 남이가'하는 관계가 되었다. 환자로 만나 동네 지인이 된 것이다). 얼마나 힘드실까, 얼마나 잠을 못 주무실까 싶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히스테리나 짜증이 드러나지 않고 굉장히 안정된 성품을 가진 분이셨다. 이후로 정연이는 침과 한약치료를 병행했고 한약처방 또한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다른 처방을 쓰곤 했다. 그중 정연이에게 대표적으로 쓴 처방이 바로 <가미온담탕(加味溫膽湯)>이라는 처방이었다.




<가미온담탕>은 ‘온담(溫膽)’이라는 처방명에서 알 수 있듯이 ‘담(膽)을 다독거려준다’는 뜻을 품고 있다. 심장과 담이 약하여 겁을 잘 먹고 잘 놀라며 잠을 잘 못 자는 경우에 쓰인다. 가미온담탕은 발자국 소리에도 깜짝 놀라는 불안증세를 보였다던 사도세자가 먹은 처방이기도 하다.

정연이가 먹은 <가미온담탕>에는 향부자, 진피, 반하, 지실, 죽여, 복령, 시호, 맥문동, 길경, 감초, 용안육, 용골, 모려, 산약, 자초 등의 약재가 들어갔는데 그중에서도 나의 눈에 띈 것은 ‘용골(龍骨)’과 시멘트처럼 보이는 ‘모려(牡蠣)’라는 가루 약재였다.



용골(龍骨)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공룡 뼈'이지만 지금은 ‘포유동물의 화석화된 뼈’로 이해하면 된다, 모려(牡蠣)는 굴 껍데기를 불에 태운 것이다. 각각 흰색과 회색의 가루 약재인데 마치 눈이 모든 것을 덮듯 용골과 모려는 연고처럼 달래주고 얼러주는 느낌이 있다. ‘용골’과 ‘모려’는 콤비로 움직이며 신경을 안정시키는데 쓰인다. 계란 껍데기, 조개껍질, 굴 껍데기 등에 함유된 탄산칼슘이 신경 안정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탄산칼슘은 시멘트의 원료이기도 한만큼 모려가 시멘트로 보이는 것도 전혀 뜬금없는 건 아니었다.

또 다른 특이한 약재는 죽여(竹茹)인데 이는 대나무 속껍질을 말린 것이다. 더운 여름 죽부인을 안고 자던 조상처럼 대나무의 서늘한 성질이 열을 가라앉히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죽여’는 아이들의 경련성 질환에도 쓰이는 약재이다. 죽여의 모양이 마치 잠 못 자는 아기 시원하게 덮어주는 삼베 이불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나무 속껍질인 '죽여', 더운 여름 시원하게 잠들 수 있는 삼베 이불 같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라고 노래 부르듯 가루 약재를 약 보자기에 붓는 남편을 보며 정연이의 눈도 스르르 감기길 기대했다. 그렇게 잠을 안 자 한의원 신세를 지곤 했던 정연이는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다. 어릴 적 잠을 안 자 엄마 고생시킨 거 알고 있을까? 차트에 처방명으로 다 기록이 되어 있다. 나중에 엄마 속 썩이면 차트 보여줘야지!


많은 아이들 중 정연이가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보다 부처님 가운데 토막처럼 안정된 심성의 엄마가 흔들리지 않고 치료의 중심을 잡았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은 침대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자장가이자 최고의 처방은 역시 엄마다.


야경증 약재밥상. 잠 안 자는 우리 아기 자장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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