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_1

담벼락과 나무

by 이백

이태원 하면 사실 언덕과 골목길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남산 자락에 있어 아주 가파른 언덕을 자랑하고 크고 작은 골목은 또 얼마나 많은지 골목길에 잘못 들어섰다가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아마 이태원역에서 경리단길을 갈 때 지도를 보고 찾아가 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언덕 중턱 즈음을 지나갈때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느냐는 불만을 적어도 백번 정도는 들었으니 공감하는 사람이 꽤 될 거라 믿는다.


이태원에서 내가 살았던 지역도 그 산자락 중턱에 있었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꽤나 경사 진 구역에 있어 집과 집 사이의 단차가 꽤 높았고 우리 집과 아랫집 사이의 단차는 유독 더 높았다. 그랬기 때문에 두 집 사이에 놓인 골목길에는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낮은 담벼락이 세워져 있었다(어릴 때야 높게만 느껴졌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겨우 내 키 정도 됐을 듯하다). 거친 회색 빛의 벽돌로 쌓은 담이었다. 회색 돌담벼락 너머에 있는 아랫집은 내 기억 속에는 풀숲으로 뒤덮인 아주 으스스한 분위기의 단층집이었다. 검은 대문 밖에서는 집 안 쪽이 보이지 않았고 항상 누가 살기는 하나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엄마는 그곳이 어린이집이었고 나도 다녔던 곳이라고 했지만 내 기억엔 남아 있지 않다. 그저 해가지고 심부름을 가야 할 때 그 집 앞을 지나는 게 무서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왜 그 집 앞에만 하필 가로등이 없었는지.


어쨌든 그 으스스한 집과 우리 집 사이에 있던 골목길은 차가 잘 다니지는 않지만 꽤 넓었기 때문에 우리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쓰이곤 했다. 골목 중턱에 아랫집에서부터 시작되는 커다란 나무까지 있었으니 굳이 언덕 꼭대기에 있는 놀이터까지 가는 아이가 없었다. 담벼락과 커다란 나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할 수 있는 골목만 있으면 하루를 보낼 수 있던 시절이었다.


내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 또래 친구가 꽤 있었다. 누가 어디에 사는지 쟤네 엄마가 누구인지 서로 아는 사이었고 나이는 다 달랐지만 같은 골목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가 제일 많이 했던 놀이는 담을 타고 올라 담벼락 넘어의 풍경을 보는 것이었다. 담 넘어는 낭떠러지마냥 높았기에 겁쟁이인 나는 담 위에 올라타 보지는 못했지만 매일같이 담에 매달려 담 넘어의 세상을 구경하곤 했다. 사실 볼 것도 없었을 텐데 그때는 담에 가려진 세상이 그렇게 매일같이 궁금했다. 가장 궁금했던 건 담 넘어에서 시작되는 나무의 뿌리였다.


길게 늘어진 담벼락 중턱에는 아주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담 너머에 뿌리를 두고 골목으로 가지를 넓게 뻗은 그 나무는 꽤 근사한 그늘을 만들어주곤 했다. 특히 여름이면 아이들은 하루 종일 나무 아래서 놀았다. 더위도 식혀주고 매미도 잡을 수 있는 나무 아래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 시절 나는 유독 담벼락 너머에 있는 나무의 뒷모습이 궁금했다. 골목길에서는 나무의 가지만 보이니 그 나무가 얼마나 큰 기둥을 갖고 있는지, 담벼락 넘어의 가지는 또 얼마나 울창할지 궁금했다. 하지만 담벼락 너머에 뿌리를 보는 일은 고작 유치원생인 내게는 무섭고 어려운 일이었다. 겨우 담벼락의 끝을 잡고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담 아래를 보는 것이 5살인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쨌든 나는 그 커다란 나무가 좋았다.


초등학교에 올라가 으스스한 아랫집이 헐리고 주차장이 된 후에 나무는 뿌리만 남은 채 잘려버렸다. 뿌리만 남겨두었는데도 나무는 썩지 않고 끈질기게 몇 년을 더 살았다. 중학생이 됐을 즘 나무는 결국 작은 가지를 키워내기까지 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길 확장 공사를 하면서 결국 나무는 뿌리마저 뽑혀버렸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썰렁했다. 어린 시절이 함께 뽑혀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줄 때면 사람들은 내게 어디 시골에서 자랐느냐고 묻곤 한다. 서울 한복판 이태원에서 나무와 담을 타고 놀았다고 하니 도대체 이태원 어디에 그런 데가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기도 한다. 상상이 잘 되지 않겠지만 이태원에는 그런 공간이 아주 많았다. 지금은 그저 통행로일 뿐인 수많은 골목길이 예전에는 어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그 꼬불꼬불한 길들은 우리가 앵두를 따먹고 달팽이도 잡으며 수없이 뛰어다녔던 놀이터였고 우리만 아는 지름길이었다. 이태원의 시간은 다른 지역보다는 조금 느리게 흘러갔던 것 같기도 하다. 더 이상 아이들이 뛰놀지는 않지만 여전히 나는 여름이면 집 앞 골목길에서 앵두를 따먹는다. 내 고향 이태원의 골목은 그렇게 특별하고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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