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귀여운 존재
나는 우리 딸에게 늘 진다. 돌도 안 된 아기에게 진다고 표현하긴 좀 뭣하지만 그렇다. 아기가 울면 달래주고 안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준다. 힘들어서 현타가 왔다가도 씩 웃는 미소 한 번에 또 안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길 반복한다.
최근에 남편과 나는 우는 딸아기를 잠시 20여분 남짓 달래주지 않았다. 요즘 초저녁에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오후 9시 전후에 깨고 있어서 이걸 고쳐보겠다고 잠깐 내버려두어봤다. 거실에 데리고 나왔던 아기를 잠시 혼자 두고 방에 숨었다.
아기를 너무 안아주면 계속 안아주며 키워야 되니 힘들다는 말을 주워듣고 그렇게 했다. 잠시 혼자 내버려두면 덜 그러려나 하는 기대감으로, 아기가 우는 소리를 듣는 게 괴로웠지만 그렇게 해봤다. 20분을 넘기기 시작해 아기는 쉰 목소리에 가깝게 울었다.
결국 효과가 없다고 단언하고 그냥 꼭 안아줬다. 아기는 진정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자다가 잠시 깨서 옆에 내가 있는지 확인도 하고 그날 새벽 종종 깼다. 9개월 원더웍스 영향도 있을 테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보다. 다음날부터 코를 훌쩍였다.
감기였다. 일전에 코감기로 꽤 고생했는데 두 번째다. 재채기만 하면 콧물이 왕창 나오고 살짝 목에 가래가 낀 듯했다. 전날 빨리 진정시켰다면 감기에 걸리지 않았을 텐데 싶었다. 그날 목놓아 우느라 목에 무리가 간 건 아닌지 많이 미안했다.
어찌 되었든 이 날을 계기로 보다 명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딸을 이길 수 없단 사실을. 재채기 한 번으로 왕창 나온 콧물에 어찌할 방도를 몰라 무기력해하면서도 코를 훌쩍이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정말이지 너무 귀여웠다.
다행히도 아기는 회복 중이다. 병원에 다녀와 콧물약을 먹고 엄마인 내가 빼놓지 않고 챙겨주는 오전 오후 이유식과 간식 그리고 분유까지 다시 나름 잘 먹고 있다. 감기 걸렸을 때 잘 자야 할 거 같아 수시로 어부바해서 재우니 잠도 잘 잤다.
그런데 엄마인 나는? 집중 보살핀 삼 일간의 시간 동안 몸을 축냈다. 가만히 있어도 피곤하고 눈이 감기고 온몸이 뻐근했다. 감기에 안 걸린 게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지만 아기에 온통 맞춘 스케줄에 끌려가듯 살고 있어서 그런가. 삶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 줄었다.
하지만 이렇게 희생하듯이만 살아야 하나? 아기한테 다 맞춘다고 꼭 맨날 져주는 사람처럼 살아야 할 필요는 없는데. 어떻게 하면 윈윈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즐기며 이겨낼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다소 재미있는 해답을 찾았다. 귀여운 아기에게 맨날 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서도 귀여운 면모를 발견해 보기로 했다. 나 자신에겐 늘 엄격하게 대하지 말고 부족함 자체로 귀엽다고 여겨보는 거다. 귀엽다고 생각하면 좌절하지 않으니까.
그러고 보니 육아로 고군분투하는 내 모습에 꽤 귀여운 구석이 많았다. 하루가 벅차다고 느끼는 순간마다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 보려고 상투를 틀듯 똥머리를 하며 의지를 다잡아보는나. 아기가 잠을 잘 때 무드등을 켜고 책을 읽으면서 조용히 환희하는 나. 아기 산책시킬 겸 유모차에 태우고는 때로는 찬찬히 달리며 기분전환하는 나.
그렇다. 우린 아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나름, 다 귀여운 구석들이 있다. 최근 SNS에서 밈이 됐던 출근하기 싫어하는 아저씨가 생각난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60-70대 경비원 아저씨인데 '오늘 출근하지 마까'하며 출근을 고민하면서도 '이불증니', '세두'하며 부지런히 나갈 채비를 하시는 모습에 귀여움을 느낀다.
아기처럼 대놓고 귀엽단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이는 지났지만 나 자신을 혹은 다른 누군가를 귀엽게 여기는 건 고단한 인생의 단면을 이겨내는 무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기가 가진 원초적인 귀여움보다 어쩌면 우리 자신에게 강력한 무기일지도 모른다. 귀여우면 다니까. 어른이 된 우리 자신도 귀엽다고 여길 줄 알게 되면 이기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