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간격 어느 틈에서 빚어진 사람에 대한 기억상실증
"밖에서 먹는 밥은 먹어도 허하다." 입증되지 않은 공공연한 지론이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어도 조금만 지나면 허해지는 미스터리한 경험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다. 나는 그 원인을 '손맛'에서 찾고 싶다. 맛을 느끼는 감각에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외로 '손맛'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 '손맛'을 느끼는 감각을 상실해버린 건 아닐까.
'손맛'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든든히 먹이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갖은 양념으로 감칠맛 나게 조물조물 무친 나물 반찬, 구멍 난 양말을 깁은 한 땀 한 땀의 바느질 자리,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내기 위한 애절한 손 편지의 흔적, 구석구석 닿은 손길로 정갈하게 정리된 옷장 등 살면서 한 번쯤 충분히 만족해봤을 순간에 느꼈던 진국같이 깊은 사람 맛이 아닐까.
손맛 상실의 증후는 복합적이다. 기계적인 생산, 기계적인 소비, 그 간격 어느 틈에서 빚어진 사람에 대한 기억상실증. 사람이 사람을 위해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답게 만들어진 결과물을 사람답게 향유하는 과정에서 배어나오는 손맛을 느낄 수 없게 됐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때깔 좋은 신상 아이템을 손에 넣어도, 고음질의 음악을 원하는 만큼 들어봐도, 새로운 정보의 글을 읽고 또 읽어봐도 좀처럼 허기짐을 메울 수 없다. 우리 가운데 사람에 대한 기억상실증을 치료할 수 있을까.
손맛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꾹꾹 눌러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시간이자 온전히 씹어 소화시킬 수 있는 시간. 손맛에는 실수가 필요하다. 사람다워질 수 있는 기회이자 더 아름다워질 수 있는 용기. 나는 사람이 고루 배어난 손맛을 사랑한다. 빠르고 광범위한 시대 흐름 속에서 사람으로서 많은 것들에 무감각해져야 비로소 살 수 있음을 안다. 그러나 '사람과 손맛'에서 만큼은 무감각해지고 싶지 않다. 맛을 모르고 계속 배만 채우는 미련함이나 의미를 모르고 지식만 습득하는 어리석음을 한번뿐인 삶에서 범하고 싶지 않다.
타고난 재주가 없어 수도 없이 쓰고 지움을 반복한 끝에 겨우 마무리짓는 이 글을 통해 무엇보다, 답 없이 지루하게 방황하다 결국 노답이 하나의 답일 수도 있음을 믿게 된 많은 사람 중 한 사람을 말하고 싶다. 그 사람의 손맛이 고루 배어날 수 있도록 한 자 한 자 이렇게 꾹꾹 눌러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