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누워있거나 누워있고 싶어하는 게 나다.
주로 누워있거나 누워있고 싶어하는 게 나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쌓인 설거지 통을 보며 울었던 적이 있다. 하나 뿐인 그릇, 한 개 뿐인 냄비(이것도 그릇 대용으로 사용했다), 한 쌍 뿐인 수저조차 씻지 못해 파리가 날리고, 시큼구리한 냄새가 나는 게 무척 비참했다. 시간이 지난만큼 죄책감이 두텁게 쌓였다. 내 집에 간간히 들리던 엄마와 전남자친구도 한소리 했다. 그래도 시간은 흘렀고 재활용 그릇들까지 그릇 위에 겹겹이 쌓였다. 꽉 들어찬 무기력감에 귀찮음도 버무려졌다.
어릴적, 엄마가 자주 집을 비우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엄마, 나, 동생 이렇게 셋이라서 엄마가 없으면 거의 우리끼리 있어야 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이주동안 집을 비우셨고, 설거지 담당이 되었던 나는 생각 없이 설거지를 십사일동안 쭉 미뤘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엄마는 잔뜩 쌓인 설거지통에서 썩은 음식물과 그곳에 바글바글 했던 바선생 가족들과 마주해야했다. 옛날 기억이 스쳐지나가면서, ‘날파리와 파리는 일종의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머리는 겨우 내게 일어나기를 허락해줬다.
흐르는 물에 손을 넣고 짧은 설거지를 마쳤다. 그리고 배가 고파 방금 씻은 그릇을 집어들었다. 그 그릇은 다시 오랫동안 설거지 거리가 되었다.
나도 먹자마자 설거지도 해봤고, 매일 설거지를 해보기도 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그것들은 너무 어렵다. 심지어 어찌 해냈다고 해도 설거지 통이 말끔한 것도 그 때 뿐이다. 이렇게 효과 없는 집안일이 또 있을까? 나는 설거지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설거지는 해야한다. 안하면 죄책감과 벌레를 얻고, 어쨌든 하면 뿌듯함과 깔끔함을 얻는다. 지금은 가족들과 살고 있어 설거지거리가 늘은 나도 노력한 끝에 일주일에 두 번 간신히 하고 있다.
설거지하기는 이 책의 스무번째 항목이기도 해서 난이도가 높다. 미뤄놨다가 하는 설거지 특성상 시간이 삼십분, 사십분 걸릴 때도 있는데(나만 그렇게 미루는가?) 벽만 보면서 하면 심심하니 핸드폰으로 영상이나 음악, 방송 같은 걸 틀어놓고 하면 시간이 잘 가서 좋다. 다 먹은 그릇을 설거지 통에 넣을 때는 물로 한번 음식물을 씻어 흘려보내고 그릇을 쌓으면 된다. 그렇게 하면 설거지의 난이도가 내려가고 위생 상 더 낫다(설거지를 조금 더 오래 미룰 수 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