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퇴사했다.
동생이 퇴사했다. 백수인 나 말고도 집에 있는 사람이 생겼다. 보통은 이러면 즐거운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 나에게 문이 열렸는데 어떤 문이였냐면 바로 지옥의 문이었다. 동생은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를 읽고는 미라클 모닝에 푹 빠졌고 퇴사와 동시에 미라클 모닝을 실천했다. 무고한 나와 함께. 당시 오후 4시가 기상시간이었던 내게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냐며 언어로 폭력을 휘두른 동생이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는 것 조차도 얼마나 어려운지 동생에게 호소했으나 그녀는 ‘한 번 해보면 바뀐다’며 이제부터 자신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아침 산책을 나갈거라고 했다. 나도 미라클 모닝 이틀차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책도 조금 읽었고, 아침 산책도 했다. 기간이 길어질 수록 엄마는 우리를 기특해했고 동생은 뿌듯해했다. 나는, 점점 아침이 오는게 두려워지고 있었다. 동생이 툭 치면 소스라치듯 일어나 끌려가듯 산책을 가서는 제발 이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식사를 만들었다. 깨어있어도 기분이 안좋았고(나는 저혈압이다) 매일 아침 도망치고 싶었다. 이 헬모닝은 (아침 만들기와 함께) 동생이 다른 회사에 입사함과 동시에 끝이 났다. 동생은 윤택한 시간들이었다며 미라클 모닝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소감을 남겼다. 나에게는 울고싶은 시간들 이었지만.
내가 이렇게 울분을 토하며 하고싶은 말은 사람에게는 각자 맞는 적절한 기상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거다. 나는 약기운으로 10시간 이상 자기 때문에 새벽 4시에 일어나려면 전날 저녁 6시에는 자러 가야한다. 그렇게 파악된 시간에 아직 해가 떠있고, 마음도 내킨다면, 한 번 밖으로 나가보는 건 어떨까? 잠옷 채로 모자만 쓰고 나가 바깥 바람을 마음에 가득 담아 돌아오는 것이다. 햇살도 한그릇, 풍경도 한 숟가락 담아오면 좋겠다. 이게 너무 고통스러운 활동이라는 걸 나도 느꼈다. 하지만 그만큼 하는 동안은 마음을 힘나게 하는 활동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몇달이나 헬모닝을 지속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 못해도 큰일나지 않는다. 잘못도 아니다. 분명한 건 당신도 마음이 내킨다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 먼저 본인의 리듬을 파악하며 자신을 알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