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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 찾아 May 26. 2018

규칙에 숨을 것인가?

안전함과 그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리고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종종 이런 말을 많이 씁니다. '법대로 해', 혹은 '규정에 뭐라고 되어 있어? 그대로 해'. 물론 법과 규정은 지키라고 만들어진 것이고 구성원들이 따라야 하는 규칙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규칙이 잘못된 경우도 있고, 규칙이 세월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 그것을 적용하는 사람이 전혀 그 규칙이 의도한 바와 상관없이 적용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쉽게 '규정대로 해'라고 말하곤 합니다. 


충성스러운 구성원들은 규칙을 잘 지키는데 만족하지만 진정한 조직 리더는 규칙을 잘 준수할 뿐만 아니라 조직에 맞게 적용할 줄 압니다. 필요하면 개정까지 손을 걷어붙이지요. 규정을 개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규칙들과 상충되는 바는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하고 사장의 허락까지 받아야 하지요. 특히나 직원 보상차원의 규정들은 직원 절반 이상의 동의 없이는 수준을 낮추는 변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손을 대고자 한다면 전사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 중 하나는 소위 말하는 '재무팀'이 문제가 많았습니다(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팀장이 아주 독불장군이었고 그 부하직원들도 그 모습을 똑 닮아 행동했습니다. 월말이나 연말이 되면 재무적인 데이터를 마감작업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회사 전 직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부서가 소위 '돈'을 만졌기 때문에 그것을 재무팀에 보고해야 했거든요. 재무팀 직원들이 얼마나 까탈스럽게 굴던지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SAP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그나마 덜 했을 텐데 엑셀로 보고서 만들고 부서장의 사인을 받아 타 부서에 제출하는 일은 노동력도 상당히 소모했거니와 기껏 문서를 작성하고 부서장의 사인까지 받아 제출했는데 다시 하라고 되돌려 보내는 것은 매우 모욕적인 일이었습니다. 부서장에게 가서 내가 만든 서류에 문제가 있어서 주무부서에서 퇴짜 맞았음을 알리고 다시 서명을 해 달라고 하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지요. 특히나 결재권자가 중역이나 사장님까지 포함되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일 못하는 직원으로 찍히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그 재무팀에서 그런 일들을 아주 잘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일을 아주 잘했다기보다는 '반려'를 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포지션을 상향시키는, 곧 남보다 뛰어나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능력을 깎아내려 자신들이 돋보이게 하려고 했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을 꾸역꾸역 찾아내서 돌려보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것도 매우 바쁜 마감 시간에 말이지요. 전반적으로 효율이 떨어지고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행동이었고 조직에 악영향이 컸습니다.


'제가 당신 서류 맞는지 안 맞는지 검토해 주는 사람입니까?'

'이 시간까지 서류 제출하는 게 룰인 거 몰라요?'

'이런 건 해외 본사에서도 문제를 삼을 겁니다'

'나는 다른 건 잘 모르겠고 제대로 된 서류를 만들어 오세요'

'당신은 서류를 실수 없이 만들어 오면 되고 나는 그냥 검토하고 입력하면 됩니다'


위에서 틀린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룰이 있다면 룰대로 해야지요. 하지만 조직의 목적과 효율성을 생각했을 때 그냥 '룰대로 해'라고 하는 말은 전혀 책임감과 리더십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룰이 정하는 대로만 해서 나만 안전하게 있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피를 흘리던, 회사가 망하던 나는 상관없다, 나는 룰대로만 행동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피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한 사고방식이 아닙니다.


분명히 규칙에는 '각 부서에서 서류를 제출할 것', 그리고 '재무팀은 서류를 검토하고 처리할 것' 정도로 되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것은 네 몫이고 검토는 내 몫이다', '내가 이래라저래라 사전에 조언할 의무는 없다', '다만 마감은 오늘 5시까지니깐 빨리해라', '룰대로 하자는 것뿐인데 왜 못하냐'라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규칙이라는 테두리 뒤에 숨어서 칼을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업무를 효율적으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규칙에서 정하지 않았더라도 '서류를 작성해서 마감 하루 전에 가져오면 간단하게 프리뷰를 해 주겠다. 하지만 프리뷰가 서류의 무결점 및 통과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도움은 될 것이다' 정도로 가이드를 해 준다면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겠지요.



미국 노동역사 초기에도 역시 법을 적용하는데 과오들이 많았습니다. 그중 하나가 1896년에 대법원에서 판결된 Vegelahn v. Guntner인데, 이 판례에서 노동법의 해석에 대한 선견지명이 나옵니다. 그 당시 노조가 회사 앞에서 피케팅을 하면서 출퇴근하는 근로자들에게 임금인상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당시에는 회사 앞에 일자리를 구하려고 서성거리는 이들이 많았음)에게도 동일한 압박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법원에서 Injunction(중지 명령)을 받아서 이들의 노력을 쉽게 해체시켰습니다. 당시에 미국에는 셔먼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셔먼법은 Anti-Trust법이라고 하여 독점금지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좀 더 자세하게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른 설명을 가져오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경쟁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로 불리는 셔먼법은 국내외 거래를 제한할 수 있는 생산주체 간 어떤 형태의 연합도 불법이며, 미국에서 이뤄지는 거래 또는 통상에 대한 어떤 독점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등의 2가지 핵심조항을 담고 있다. 독점을 기도하거나 이를 위한 공모에서부터 가격담합, 생산량 제한 등 불공정행위를 포괄적으로 금지하였고, 위반 시 법원이 기업 해산명령 및 불법활동 금지명령을 내리거나 벌금ㆍ구금에 처할 수 있으며, 불공정행위의 손해 당사자들이 손해액의 3배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셔먼법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19세기 미국은 소수 기업인들의 독과점 영향력의 행사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고 그래서 카르텔을 형성하거나 독과점을 형성할 수 없도록 '셔먼법'이 나오게 됩니다. 셔먼법의 취지는 독점을 제한하자는 것인데 여기에서 '공모(Combination of busienss(monopolies) that eliminate competition and result in a restraint of trade)'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거대 자본가와 맞서 자신들의 최소한의 권리와 처우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모여서 파업을 하고 피케팅을 하는 것을 법원에서 이 범주, 즉 노동쟁의를 단순하게 거래를 제한하고 경쟁을 말소시키는 담합이라는 범주에 넣어버리고 해석하게 됩니다. 애초 목적과 다르게 법을 적용한 것이지요. 결국 Vegelahn v. Guntner 사건은 사용자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대법원에서는 판결 외에도 반대의견을 붙이는 Dissent라는 것이 있는데, 이 판결에서 홈즈라는 대법관이 걸작의 반대의견을 남깁니다. 아래는 그 발언 중 일부 발췌입니다.

The true grounds of decision are considerations of policy and of social advantage, and it is vain to suppose that solutions can be attained merely by logic and general propositions of law which nobody disputes.

진정한 결정 근거는 정책과 사회적 이점에 대한 고려이며, 논쟁의 여지가 없는 논리와 일반적인 법안에 의해서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법은 그 언어 자체에서는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그 자체로 완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회적(회사에서는 조직의) 이점과 정책에 상응하는 노력 없이 '법대로만 하자'라고 하고 법에 드러난 언어로만 판단하고 해결하는 것은 헛된 일인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묻혀버렸던 홈즈의 의견은 훗날 Norris Raguardia 법(이 법으로 인하여 평화적 노동쟁의에 대한 연방재판소의 Injuction 발급이 금지됨)으로 완성됩니다.



사실 이제 막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사원들에게는 아무리 명철한 인사이트가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의 규칙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럴 때 신입사원은 정해준 규칙 내에서 '프로세스를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인사를 비롯한 재무, 총무, 시설 등의 부서들은 소위 지원부서라고 하여 회사의 직접직인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사처럼 사람에 대한 정책을 다루거나 재무처럼 돈을 만지는 부서에서는 '지원부서'로서의 의무를 잊고 가끔 쉽게 권력의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회사의 규정에 대한 권위를 세워나가는 것은 분명히 필요하고 해야하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사업이 잘 되도록 돕는 직무도 가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따라서 간결한 프로세스는 다른 부서들이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관리자 급이라면 정말 긴 안목으로 규정을 손볼 수 있어야 합니다.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가 '하던 대로 하자, 문제없었잖아?'입니다. 정말 회사를 생각하는 리더라면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정, 혹은 비효율적인 규정을 잘 손봐서 회사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물론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말다툼을 해야 하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 부가적으로 업무를 맡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이것은 관리자급만 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에 그 역할이 막중합니다.


법 안에 머무는 것은 언제나 안전합니다.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습니다. 정해진 룰대로 한다는데 그 논리를 이기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정말 그 룰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파악하여 적용한다면, 당신이 속한 조직은 좀 더 효율적이고 성과 있는 조직으로 변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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