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위한 것인가
검열이라니. 요즘 시대에 무슨 말인가 싶을지도 모른다. 그 단어는 어디까지나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교과서 속 역사나, 오래된 소설의 배경 같은 것. 하지만 공공도서관에서 일하다 보면, 그 단어는 생각보다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평범한 얼굴로.
“이 책은 문제가 있으니 빼 주세요.”
대개는 부탁이 아니다. 명령에 가깝다. 빼지 않으면 민원을 계속 넣겠다는 문장이 따라붙는다. 그 문장에는 늘 기한이 없다. 대신 반복이 예고되어 있다. 조용히 사라지지 않겠다는 의지 같은 것.
대상은 거의 정해져 있다. 어린이 성교육 도서, 정치 관련 도서, 페미니즘을 다룬 책, 혹은 특정 관점을 담은 어린이 교육 도서들. 책장은 여전히 고요한데, 누군가의 눈에는 그 안에서 불온한 기운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침묵 속에서 위협을 읽어낸다.
방식은 집요하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민원을 남기고,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소리를 높인다. 공문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몇 사람을 이끌고 간부의 사무실로 향한다. 드물지 않게 의원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왜 우리 당을 비판하는 책을 샀느냐.”하고 꾸짖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건 지적 자유의 침해다.
도서관은 국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정보 접근을 보장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 문장은 이미 여러 번 선언되었다. 선언문 속에서는 언제나 명확하다.
“도서관인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서 자신의 편견을 배제하고 정보 접근을 저해하는 일체의 검열에 반대한다.”
― 도서관인 윤리선언(2019)
“장서와 서비스는 어떠한 형태의 이념적, 정치적, 종교적 검열이나 상업적 압력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IFLA·UNESCO 공공도서관선언(2022)
“도서와 기타 도서관 자원은 봉사대상 지역사회의 모든 사람들의 관심, 정보, 계발을 위해 제공돼야 한다. 자료는 창작자의 출신, 배경, 견해 때문에 배제돼서는 안 된다. 도서관은 검열에 도전해야 한다.”
― 도서관권리선언(2019)
문장들은 단정하고, 뜻도 분명하다. 문제는 선언문은 선언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에서 민원이 몰아치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자료실 사서가 민원을 직접 받을 때는 최대한 설명하려 한다.
“특정 이념이 담겼다는 이유로 책을 뺄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다.
그러나 민원이 간부에게 직접 닿는 순간, 공기는 달라진다. 간부는 불쾌해지고, 더 큰 문제를 걱정한다. 지속적인 민원, 의원의 개입, 불필요한 언론 노출 같은 것들. 그리고 결국 한 문장이 떨어진다.
“민원 들어온 책은 싹 다 보존서고로 내려라. 검색도 막아라.”
그러니까, 없던 책으로 만들라는 것이다.
간부가 사서 출신이든 아니든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선언문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검열이라는 단어도 등장하지 않았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가장 덜 귀찮은 선택이 이루어졌다.
나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그래서 이제는 관장들도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민원이 들어온 책은 그냥 내려버린다. 더 나아가 사서가 먼저 눈치를 보고 선제적으로 책을 내리기도 한다.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순응. 그것은 신념이 아니라, 두려움의 습관에 가깝다.
아이러니한 것은, 언제나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도서관은 축하의 의미로 그의 책을 모아 전시했다. 그런데 누군가 정치적인 이유를 들어 민원을 넣었다.
“왜 이런 작가의 책을 빌려주느냐.”
그때 간부는 책을 숨기지 않았다. 더 큰 논란이 생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관장이 직접 나서 민원인을 설득했고, 그 일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니까,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신념 없는 결정은 늘 나를 실망시킨다. 그러나 그 실망은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목소리를 내더라도, 닿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의 공기는 언제나 고요하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는 것은 이상하게도 책이 아니라 사서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