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탑, 책의 산, 책의 무덤
책장은 늘 여유를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되돌아온 책이 제자리를 찾고,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도서관의 서가는 이미 오래전에 숨을 멈춘 것처럼 보인다. 빈 공간은 없다. 반납된 책을 꽂으려면 억지로 틈을 벌리거나, 차마 용납하고 싶지 않지만 다른 책 위에 눕혀야 한다. 그렇게 눕혀진 책들은 서로의 무게에 눌린 채, 조용히 신음하는 것 같다.
그런 숨막히는 서가 앞에 서 있으면, 책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든다. 하지만 그 바람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의 서가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도서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책을 숫자로만 이해했다. 장서량은 늘어날수록 좋고, 폐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었다.
규정상 책은 1년에 최대 7퍼센트까지 폐기할 수 있다. 장서가 10만 권이라면, 많아야 7천 권이다. 그만큼을 새로 들이고, 그만큼을 비워내면 숫자는 그대로 유지된다. 서가는 숨을 쉬고, 책은 순환한다. 단순한 이치다. 계산기로도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윗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가가 꽉 차 더 이상 책을 꽂을 수 없다는 현실보다, ‘폐기를 했다’는 사실이 의회에서 문제가 될 가능성을 더 두려워했다. 책이 썩어 가는 풍경은 눈을 감고 보지 않았고, 보고서에 남을 문장만이 중요했다.
결국 우리 도서관은 개관 이후 1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폐기를 하지 않았다. 책은 계속 들어왔고, 한 권도 나가지 않았다. 자료실 사서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책을 보존서고로 내려보냈다.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유예였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보존서고마저 숨이 막혔다. 그 안은 원래 책이 오래 머물도록 설계된 공간이 아니었다. 이름뿐인 보존서고였기에, 항온항습기도 없었고, 습도를 관리할 예산도 없었다. 전기세가 아깝다는 이유로, 공기는 늘 그대로였다.
보존서고가 가득 차자, 책들은 스무 권씩 묶여 노끈에 감겼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졌다. 처음에는 작은 탑이었다. 그 탑은 해마다 하나씩 늘어났고, 어느새 탑 위에 탑이 쌓였다. 마침내 그것은 산이 되었다.
책의 산, 순서를 알 수 없는 책의 무덤, 빛도 바람도 닿지 않는 책의 감옥.
그곳에서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었다. 읽히지 않았고, 넘겨지지 않았으며, 존재 이유도 흐릿해졌다. 단지 묶여 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세월이 흐르며 젊은 직원들이 늘어났다. 그들은 이전보다 큰 목소리를 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제야 폐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책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표지는 눅눅하게 일그러졌고, 책장 사이에서는 삭은 냄새가 새어 나왔다. 종이는 손에 닿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았다.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었다. 그저 부패한 종이더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사람들은 ‘과도한 폐기’를 걱정했다. 기준은 없었다. 단지 많아 보인다는 이유였다. 5만 권 이상 버려야 할 책이 있어도, 그중 일부만 폐기되었다. 나머지는 다시 묶여, 다시 쌓였다.
그래서 우리 도서관의 보존서고는 지금도 책의 감옥으로 남아 있다. 책은 그 안에서 숨을 쉬지 못한 채, 사서들의 애환과 함께 묶여 있다. 언젠가는 모두 버려질 운명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책은 오래전에 죽었지만, 아무도 그 죽음을 선뜻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