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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Aug 01. 2022

22-09 선생님, 제가 1정 연수를 갑니다.

담임교사와 부담임 교사


너 생각해봐. 학교 다닐 때 부담임 선생님 기억나?


전입교사 오리엔테이션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오리엔테이션 책자에서 내 이름을 찾는 일이었다. 교장선생님 인사 말씀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책자를 한 장 한 장 정성껏 넘기며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내 이름 찾기에 몰두했다. 전입교사 명단, 교직원 연락처, 교내 전화번호 말고 내 이름이 어디 있겠나.. 하다가 갑자기 내 이름을 발견한 곳은 담임교사 명단이었다. O학년 O반 부담임에 내 이름 OOO이 있었다.


난 부담임 교사 배정에 어떤 기준이 있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교직 0년 차인 내게 부담임을 줄 수도 있다는 것, 비교과 교사에게 부담임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기도에서 기간제 사서교사로 일하고 있는 K선배와 L양에게 바로 연락을 취했다. 학교라는 곳에서 모든 것이 다 처음인 나는 모르는 것 투성이고, 내가 학교 다닐 때를 떠올리며 그때를 참고하기에는 그간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것이다. 그래서 요즘 학교는 부담임 선생님이 뭐 대단한 거 하는 거 아닐까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아하다는 듯 비교과 교사는 거의 부담임이 없는데..라는 답변과 근데 뭐 부담임이 뭐 하는 일 있겠니? 너 생각해봐. 학교 다닐 때 부담임 선생님 기억나? 거봐 기억 안 나잖아. 그러니까 그냥 이름만 올려놓는 거겠지 뭐. 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 또한 참 순진하게 그 말에 큰 안심이 되었다고나 할까?




학교는 학기 초와 방학 전에 가장 바쁘다는 말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메신저가 띵동 하고 도착했다. 이름이 눈에 익은 선생님이다.


선생님, 제가 1정 연수를 갑니다.


선생님, 제가 1정 연수를 갑니다.라고 시작된 메신저 내용에는 연수 일정이 방학 전 주, 한 주가 겹쳐서 학교에 나올 수 없고, 부담임인 내가 일주일 동안 조회와 종례를 맡아 주십사 하는 요청이었다. 갑자기 등에서 식은땀이 쭉 흐르고 얼굴이 빨개졌는데,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O학년 O반 담임  정선생님이셨다.


3월 한 달 동안 나는 "제가 학교가 처음이라서요."라는 말을 자주 하고 살았다. 그런데, 문득 이 말을 하면 할수록 상대방에게 실례가 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처음이니 당신이 나를 좀 배려해주세요.라는 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달하자 난 이 말을 쓰지 않게 되었는데, 너무 당황하니 나도 모르게 정선생님께 커밍아웃을 하고 말았다. 내 처지는 이렇지만, 잘 인계해 주시면 한 번 해볼게요.라는 말을 했을 때 정선생님은 큰 숨을 내쉬며, 안된다고 하실까 봐 걱정했어요.라고 말했다.  


정선생님은 1,2, 3학년 담임선생님과 부장 선생님들에게 내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O학년 O반의 부담임 선생님을 맡기로 했으니 전달하실 사항이 있으면 함께 전달해 달라는 공지를 했고, 그날 이후로 나의 걱정이 태산처럼 불고 불고 또 불어났고, 메신저도 쌓이고 쌓이고 또 쌓였다. 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하기 전까지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는 마음은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선생님의 연수 기간은 따박따박 다가오고 있지만, 나는 정선생님의 연락을, 아니 지시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교재도 없고 범위도 없는 이 테스트는 나를 더욱 조바심 나게 했고, 막판에는 될 대로 되겠지라는 바람직한 자세를 갖게 해 주었다.




그러니까 왜 당근을 종례 전에 잡고 그래!


첫 만남에 아이들은 놀랍도록 얌전했다. 내가 누군지 아냐고 묻자 아이들은 도서관 선생님이요.라고 하길래, 사서 선생님이라고 불러줘 그리고 내 이름은 OOO.이라고 칠판에 적었다. 그럼 나도 너희 이름 한 번 불러볼게. 라며 아이들의 이름을 한 번 씩 불러보았다. 하지만, 그 얌전하고 착한 아이들은 첫 만남 이후로는 많이 달라졌다. 종례를 하러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의자에 앉을 생각도 하지 않고 어서 빨리 종례를 마쳐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누군가 불을 껐다. 좀 켜줄래?라고 하자 불을 켜줬다. 좀 앉을래?라고 하자 저 당근 하러 가야 해요!라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니까 왜 당근을 종례 전에 잡고 그러니.라고 말했을 뿐. 아이들이 우르르 나가고 혼자 남았을 때 용준이는 내 옆에 다가와 같이 책상을 정리해주고, 함께 교실을 나왔다. 덩치는 큰 아이들이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당근 하러 가야 한다는 말 조차도.


이렇게 일주일 나의 부담임 교사 생활이 마무리되었고, 정선생님의 걱정도 마무리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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