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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Mar 31. 2023

23-06 책과 핸드폰과 화장실

방과 후 수업

목요일 오후 4시, 퇴근 30분 전이었다. 교감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냉큼 달려간 교무실에는 처음 보는 각 과 부장님들이 앉아 계셨고, 내 자리도 마련돼 있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채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앉았는데, 교감 선생님이 운을 띄웠다. 방과 후 수업에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추가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나머지 선생님 모두가 내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방과 후 수업을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는 똥멍충이었다. 눈으로 제일 어려 보이는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아마도 내 눈은 내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것 같다. 외로움 속에 홀로 있던 나는 '저는 똥멍청이입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아.. 와 네..로 모든 대답을 하고 말았고, 나의 대답에 모두가 안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뭐가 좀 잘 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메신저에 지금까지 도착한 모든 파일에서 '방과 후'라는 단어가 들어간 문서를 다 열어보았다.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라 여기고 그냥 넘겼던 문서들이었다. 어떤 식으로 수업은 진행되는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인지, 수업 내용과 수준은 어떤 식으로 구성해야 하는지 등등 단 1도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리고 나는 몇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단 한 가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부터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몇 번을 빨개졌다 말았다 하는 시간을 보내며 비판적 읽기, 사실적 읽기, 감상적 읽기 등으로 독서를 하고, 독후활동을 하는 것으로 겨우 수업 전에 강의 계획서를 완성했다. 그리고 첫 시간에는 앞으로 3주간, 총 23차시 동안 읽을 책을 선정하는 시간을 아이들과 가지기로 했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 계획대로 수업이 진행되기 어려웠다. 10차시가 될 때까지 명단이 수시로 변경되었고, 아이들이 너무 많아 타 교과 선생님과 함께 반을 운영하다 보니 어려움이 좀 있었다. 결국 동시에 한 권을 책을 23차시 동안 읽히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어, 개별적으로 한 명씩 독서 수준을 상담하고 책을 선정해 주었고, 각자 책을 읽는 것으로 나의 독서교육은 마무리되어 버렸다.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고민해 보고, 다음 방과 후 수업에 적용해야겠다.


1. 핸드폰

가장 큰 문제는 핸드폰이다. 아이들의 손에 핸드폰이 있다면 수업은, 특히 도서관에서 책과 관련된 수업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가 돌아서면 핸드폰을 꺼내는 아이들에게 정말 입이 아파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도서관에서는 핸드폰 금지를 반드시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 화장실

핸드폰과 연결된 이야기이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못 꺼내게 하자,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너무 안 와서 도서관 로비로 나가보니, 소파에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화장실은 수업 전에 다시 확인하고 수업을 시작해야겠다.


3. 라포: 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관계

우선 아이들과 라포가 형성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사교적인 아이들의 경우에는 내가 추천해 주는 책을 정해진 시간에 잘 읽어냈고, 읽고 난 후 감상이나 느낀 점을 대화로 유도하면(어? 나 이거 읽고 싶었는데 무슨 내용이야? 정도로) 곧 잘 설명했다.


그리고 오늘, 2차 방과 후 수업을 개설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독서 A반과 독서 B반이 있고, 인원도 15명 이내이다. 지난 수업보다 인원이 많이 줄었고, 이 정도 인원이면 내가 하고 싶은 내용으로 수업을 구성해도 좋을 것 같다. 이번에도 아이들이 잘 따라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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