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진 Oct 30. 2023

명상의 기록

이상한 마음

2023.09.07. 목요일

이상한 마음. 이상한 마음이란 이런 것이다. 지금 내 상황이 나로서는 너무 힘들고 괴로운 일인데, 너무 힘들고 괴롭다는 말을 하기 싫다.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아닌척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티는 나는 것 같다. 힘들어서 울고 싶은 마음이 큰데, 울고 싶지는 않다. 나약해 보일까 봐. 이런 마음의 작용 때문인지 눈물도 말라 버렸다. 그런데 언니에게는 나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도 언니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내게 명상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첫 명상수업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에 뜻밖에도 나는 눈물이 났다. 흐르는 눈물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입은 웃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창피했지만 눈물을 닦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다 같이 명상을 하고 있겠지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 일었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흘려보내려고 노력했다. 노력하지 말아야 하는데 노력을 했다


2023.09.08. 금요일

오늘 아침 홀로 하는 나의 첫 명상이 시작되었다. 명상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른 채 그냥 20분 타이머를 맞춰놓고 어제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처럼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천천히 내려오면서 몸에 힘을 빼는 것부터 따라 해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잡생각들을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에 흘러가는 배경을 보듯 그렇게 지나가게 두려고 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 혼자 하는데도, 이렇게 하는 게 틀리면 어쩌나, 알람이 잘 못되었으면 어쩌나, 벨이 울리지 않으면 어쩌나, 잘 되고 있는 건가 하는 다양한 마음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마음들 속에도 20분이라는 시간을 다 채웠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2023. 09. 09. 토요일

지금 나는 매우 어두운 터널에 들어섰지만 꾸역꾸역 앞으로 걷고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도 기쁘지 않고, 잠드는 일도 기쁘지 않다. 어떤 일도 재미있지 않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의미 없게 보내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매일 도서관에 나와서 공부를 하고 있다. 아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잠에서 깨자마자 명상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은 얼마 전까지 빈방이었다가 지난 목요일 이후부터 명상의 방이 되었다. 방석에 앉아 타이머 20분을 맞추고 싱잉볼을 한 번 치고 눈을 감았다. 잠에서 막 깨어서 그런지 자는 것인지 명상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번뜩 선생님께서 머리끝에서부터 차례로 힘을 빼라는 이야기가 기억났다. 혼자 머리 어깨 팔 허리... 라며 내 몸의 군데군데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했다. 오늘은 생각이 더 많이 올라왔다.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그려보기도 하고,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보기도 하고 기차의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에 나의 생각들을 실어서 보내보기도 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다 보니 알람이 울렸다.


2023. 09. 10. 일요일

하루종일 누워있었다. 불안한 마음 때문에 누워있을 수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그냥 누워있었다. 누워서 티브이를 켜고 드라마를 보았다. 김희선이 나오는 드라마였다. 재미없었지만 딱히 신경을 돌릴 다른 것이 없었기 때문에 끝까지 달려 최종 편까지 완료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다 가고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래서 명상은 밤늦게 이루어졌다.  나는 내가 가엾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에게 찾아온 자유로운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내가 불쌍했다. 편안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내가 가여웠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마다 그런 내가 가여워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명상을 하는 동안 이전과는 다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현실의 문제가 명상하는 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고 뱅뱅 맴돌았다. 딴생각만 하다가 명상이 마무리되었다. 


2023. 09. 11.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위해 앉았다. 공부를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마음이 잡히지는 않았다. 이런 날들이 계속 반복되면 정말 우울증에 걸리고 말 것 같았다. 그래서 명상을 시작했는데,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긴장을 한 탓인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머릿속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명상이 반복될수록 머릿속에는 걱정만 가득 쌓이고 있었다. 떨쳐버리려고 해도 다시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오늘 아침도 마찬가지. 머릿속에는 다시 복잡한 문제들로 머리가 아팠다. 한숨이 나왔고, 눈을 뜨고 싶었고, 일어나고 싶었다. 20분을 다 채우긴 했지만 뭘 한 것인지도 모르게 시간만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