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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Oct 31. 2023

잘못된 성장의 사례

대본집

저자 : 강현주

출판사 : 이음희곡선

발행일 : 2023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 180쪽 | 115*185*20mm





도윤

걔네가 살던 데서는 천적이 많았던 거지. 그래서 열심히 독을 만들었어. 천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야 되니까. 그땐 그래야 되니까. 근데 그 개체가 신발 타고 배 타고 우리나라로 왔잖아?  여긴 천적이 없어. 그냥 맘 편하게 살면 되거든?  근데 그게 안 돼. 왜? 씨앗이 기억하는 거야. 예전에 살던 데를. 그래서 아무도 공격을 안 하는데도 계속 독을 만드는 거야. 안 만들어도 되는데. 기억하니까! 어? 그러다 그 독에 자기가 죽어. 이제 그냥 살아도 되는데.


혜경

충분하지 않았겠지.


안전하다는 걸 믿는 데까지 필요한 시간이-

한 번도 안전해 본 적이 없는 개체가 자기가 안전하다는 걸 어떻게 쉽게 믿을 수 있겠어.



은주

원래 '자란'식물이랑 '키운' 식물은 달라. 사람이 키운 식물은 음.. 인간적인 식물이 되는 거거든. 사람이 만든 환경에 맞춰서 키워지는 거니까. 같은 종이라도. 응.


지연

마트 가면 다 똑같이 생긴 당근만 있잖아. 그런 거 보면 좀 징그러울 때 있어요.


은주

사람이 키우는 건 유전적으로 봤을 때는 다양성이 없어. 사람이 만든 환경에서 잘 자라도록 만든 거니까. 원래 생물이라는 건 다 각자 달라지고 싶어 하는데 그걸 똑같이 만든다는 게...

징그럽기도 하지. 최정호는 그런 걸 찾아다니는 거거든.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종이 있고, 다양한 환경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


인범

근데 사람한텐 안 그러잖아요. '식물은 이렇게 다양하구나. 와- 감탄하고. '기록하고 보존하자.' 왜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 거예요?


지연

사람은 사람이 키우잖아. 어떻게든 분류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게 인간의 습성인데. 다양하게 살 수도 없고, 또 그 꼴을 못 보지.



혜경

그 아이요.

작년에. 정전된 날 교수님이 길에서 본 아이.


'그런 애들은 커서 뭐가 될까'

저는 걔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잘 지켜봐 주기만 하면.




혜경

그거 말이야. 전에 네가 귀화식물 얘기 해준 거


도윤

어. 천적 없는데도 죽는 애들?


혜경

어. 이제 자기가 안전한 줄도 모르고 계속 독을 만들다가 그 독에 자기가 죽는다고 했잖아.


도윤

.. 어 왜?


혜경

.. 그래도 살아있다면 믿게 될 거야? 이제 계속 안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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