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부 아이들은 꽤 성실하게 봉사한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서로 자기 시간을 잘 지키는 편이다. 이 학교는 봉사를 조회 전과 점심시간에 주로 하는데, 8시 50분 조회하기 전 도서관에 와서 전날 반납된 책들을 정리하고 간다. 이 시간을 반드시, 꼭 지키라고 강조한 적은 없는데, 도서부 채린이는 늘 아침마다 단톡방에 톡을 남긴다. "조금 늦을 것 같아요."라고. 조금 늦어도 혹은 많이 늦어서 봉사를 못하고 인사만 하고 가도 그것만으로도 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고 생각하는데, 채린이는 꼭 이렇게 보고를 해주는 다정한 아이이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채린이가 자기가 만든 쿠키라며 작은 봉지를 내밀었다. 그 안에는 몇 개의 쿠기가 담겨 있었는데, 캐릭터가 그려진 비닐봉지에 본인이 좋아하는 스티커를 붙여 가져온 것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며칠을 모니터 앞에 두고 못 먹고 있었는데, 채린이가 "선생님, 그거 빨리 먹는 게 더 맛있어요."라고 말했다. 다정한 아이구나. 사실은 선생님은 왜 내가 준 쿠키를 안 먹고 계실까. 빨리 드셨으면 좋겠다.라는 속 뜻이었을 거다. 나는 더 이상 채린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맛있게 먹었다고 말해 주어야지. 그리고 너의 쿠키는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을 거라고 말해 주어야지.
다정한 사람이 좋다고 늘 말해왔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다정함이 결국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것도 진심이었다. 다정함은 정말로 근사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얼마 전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책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협력은 우리 종의 생존의 핵심이며, 인간만큼 친화력이 있는 동물은 거의 없으며, 친화력이 인간이라는 우리 종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사람의 자기가축화(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길들여지다)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울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사람의 자기가축화 가설이 옳다면 우리 종이 번성한 것은 우리가 똑똑 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친화적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