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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un 24. 2022

22-03 나는, 지금을 살지

기뻤지만, 기쁠 수만은 없었다. 이직을 마음으로 결정하고 경험 삼아 면접을 봤는데, 실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 나이 마흔일곱에 정말로 이직을 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밤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있는 곳은 서울/경기와 달라서 기간제 사서교사 자리가 많지 않다는 것, 육아휴직 자리를 대체하는 수준이어서 매년 1-2월이 되면 실직의 위기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 나를 가장 고민스럽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나에게 수집되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1차와 2차 모집에도 사서교사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국어과 교사를 상치교사로 채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내가 지원한 이 학교는 전년도에 기간제 교사가 도서관을 담당했는데 국어과 교사였다. 이런 상황이면 사서교사가 귀하다는 말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계약 만료라는 상황에 부딪혀보지 못한 나는 그 두려움을 씻을 수가 없었다. 매년 1-2월에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 삶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조언이 필요했다.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 1은 나의 상황 설명에 일단 질러보자는 의견을 냈다. 나중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 아니냐고 나의 이직을 독려했다. 선배 1는 지금은 1년이라도 경력을 쌓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냐고 했다. 일단 학교도서관 경력이 3개월이라도 있는 사람과 함께 면접을 봤다면, 넌 바로 탈락이었을 거라며 1년이라도 경력을 쌓는 것이 다음 학교를 가더라도 중요하다고 했다. 친구 2는 걱정 말아라! 내가 모든 것을 가르쳐줄게. 3월 2일 개학일에 전화 옆에 딱 붙어 있을게. 일단 도전하자! 라며 응원했다.


선배 1은 3년 전에 20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기간제 사서교사로 나왔다. 언젠가 너도 기간제로 나오면 좋지 않겠냐고 했는데, 언니 저 이제 나가려고요. 라며 나의 상황을 설명하니 1년 육아휴직 자리에 약간 회의적이었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그냥 있던 곳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남편은 결사반대. 많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1년마다 자리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고생스럽겠냐며 이직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엄마는 말할 것도 없이 난리가 났다. 그만한 직장이 어디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나이 들어서 면접보고 다닐래까지 논리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고 다 감정적인 이유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다.  

나는, 지금을 살지


이렇게 양쪽으로 극명하게 갈리는 주변인들의 의견이 나를 몹시 혼란스럽게 했지만, 내가. 지금. 여기서.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아니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 논란의 마침표를 내가 찍었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생각해. 왜냐하면 나는 지금을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나는 나의 지금을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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