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서모임은 조금 엉터리다.
'매달 2권의 책을 읽고 도서 선정자가 메신저에 미리 올려준 질문의 답변을 준비해 모여 이야기한다'
우리 독서모임의 가장 기본적인 룰이다. 2권이 3권이 되기도, 때로 1권이 되기도 했으나 14년도 시작한 이래 이 기본 방침을 대체로 잘 지켜왔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우리는 책에 집중했던 초반과 달리 미리 준비한 질문, 답변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샛길로 빠져 다른 얘기하는 일이 무지하게 늘었다. 만약 돈을 내고 참가하는 모임이었다면 참가자들은 화가 났을지도 모른다.
어제 모임에서도 준비된 다섯 가지 질문은 모두 흐지부지되고, 3시간 반가량 시간 대부분을 근황 토크에 매진하다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고난의 첫 이사, 위험한 3중 추돌사고, 월세에서 전세 전환 실패로 인한 인생의 좌절 등 굵직한 사건들이 있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대에 모여 30대가 된 우리는 취업, 실업, 이직, 개업, 유학, 소개팅, 이별, 결혼, 육아, 이사 등 수많은 굴곡을 서로 지켜봐 왔다. 토론 질문과 답변은 단연 우리가 겪어온 일련의 사건들과 연관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서로의 인생에 있어 현재 가장 큰 이슈와 고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것에 대한 조언이 오가기도 하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 간의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고민을 던진 사람은 조용히 미소 짓고 그들의 열렬한 주장을 들어 판단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다음번 만나면 후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산다는 건 사건의 연속이자 선택의 연속, 고민의 연속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할 말이 많다. 처음에 난 이런 상황이 매우 불안했다. 토론 질문에 내가 이렇게 열심히 답변을 달아왔고 얼른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은데 자꾸 다른 얘기만 하니 애가 탔다. 겉으론 경청하는 자세였지만 동공지진이 일었고 모임 정체성에 대해 혼자 남모를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제 ‘신세한탄만 한 것 같은데 잘 들어줘서 고맙다’는 모임 친구의 메시지를 보고 ‘괜찮다. 우리는 원래 고민이 있을 때 같이 나누며 성장해 왔고, 백수일 때 나 역시 독서모임이 큰 지탱이 되었다’라고 답변하는 나를 발견했다. 더불어 ‘오히려 고민을 말해주어 고마울 때도 있다’는 다른 친구의 화룡점정까지. 성장하고 행복하기 위해 독서모임을 하는 거라면 확실히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이비드 브룩스(『소셜애니멀』저자)는 한 달에 한 차례 만나는 모임의 회원이 되는 것은 소득이 두 배로 오를 때와 동일한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9년을 해왔으니 나는 얼마나 부자가 된 것인가. 그래도 다음 만남 땐 우리가 이번에 빠뜨리고 온, 남은 시간을 “붉게 선명히” 알려주는 타이머(샛길 빠짐 방지용)는 꼭 가져오기로 한다. 우린 여전히 ‘독서’모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