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C Feb 25. 2023

벽돌 이야기

어릴 적 성남 수진동 언덕배기 골목 사이, 벽돌주택에 세 들어 살았다. 그때의 내게 벽돌은 좁은 골목 다닥다닥 붙은 주택들을 그나마 서로 경계 지어주는 물건에 불과했다. 검붉은 벽돌은 성벽처럼 단호해 보였다. 평지에 자리한 아파트로 이사 한 후, 벽돌은 머릿속에 낡은 것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차력쇼를 볼 때나 사용되는 줄 알았던 ‘박력’이라는 단어를 벽돌의 미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 서현 건축가의 글을 보고 벽돌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 깊이감, 기품 있는 자태, 햇빛이 떨어질 때 드러나는 면의 힘, 박력과 생명력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서현 저)


첫 계기는 춥지만 해가 따뜻했던 1월의 토요일, 사서가 되기 위한 관문으로 어느 대학에 면접을 보러 간 때에 있다. 면접 안내문이 붙은 벽돌 건물 일정 부분에 창문처럼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림자가 진 쪽은 벽돌의 단정함이 느껴지고 벽돌이 맞부딪칠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가 차갑게 들려올 것 같았다. 반면 해가 비친 쪽은 벽돌 사이사이 줄눈에 햇볕이 틈틈이 자리 잡아 온기가 베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대비가 면접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섞여 아름답게 느껴졌다. 아마 벽돌이 아닌 콘크리트였다면 해가 비친 부분과 그림자가 진 부분이 다르게 부각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멀리 떠나거나 약속이 있을 때, 일상 속 작은 여행을 하고 싶을 때 갈 카페를 찾는 기준으로 맛, 위치, 가격 외 ‘벽돌’로 지은 곳인가를 고려한다. 오래된 벽돌구축은 주로 가정집으로 사용되던 공간을 모두 터서 카페로 리모델링했다. 거실이었던 공간에 원래 있던 예스러운 나무 소재 천장을 그대로 남기기도 해 멋을 더한다. 신축은 구축이 가진 공간의 제약 없이 큼직큼직한 내부 공간을 견고하게 벽돌로 감싼다. 옛것과 현대의 미를 잘 조화시킨 구축 카페 주인이라면, 단단히 쌓아 올린 벽돌의 미를 선택한 신축 카페 주인이라면 맛에도 믿음이 간다. 그러나 무엇보다 건축 요소로 벽돌을 선호하는 나의 취향이 벽돌 건물을 찾아가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구축카페
신축카페

벽돌에 대한 탐미는 단정한 벽돌집을 한적한 시골에 하나 지어 올리고 싶은 꿈으로 이어지고 있다. 직장을 다니며 돈 벌고, 자기계발에 관심 갖는 것 모두 이 한 목표로 귀결된다. 마당 안에 벽돌로 된 화덕도 두어 가족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복도 꿈에 하나 더 얹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5시 기상, 4주 차 접어든 자의 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