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풀렸다기엔 찬바람이 쌩쌩 불던 2월의 마지막 금요일, 조카 2명을 앞세워 에버랜드에 다녀왔다. 예전엔 내가 조카들을 데리고 다닌다 생각했는데, 이제 조카들을 앞세워야만 갈 수 있는 곳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에버랜드다. 긴 줄 참아내며 놀이기구를 탈 만큼의 열정과 기념품숍에서 귀여운 모자를 쓰고 사진을 찍을 만큼의 풋풋함을 잃은 이모는 '조카들의 즐거움'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지 않으면 에버랜드에 가기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갔을 때가 어느 해인가 핼러윈 축제를 즐기러 온 인파를 뚫고 용감하게 60분 넘는 시간을 대기해 가장 무서운 'T익스프레스'를 탔을 때니, 꽤 오래된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어려운 일이다.
놀이기구 타느라 밥도 못 먹고 발을 동동거리던 중학교 때 이후로 20년 정도가 흘렀는데, 놀랍게도 놀이공원의 구성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좁은 입장문을 통과하면 있는 너른 광장과 집에 가기 전 아쉬워서 몇 번을 더 타는 바이킹, 무섭고 재밌는 놀이기구가 많은 구간 모두 그대로다. 그나마 내 기억에 크게 달라진 점은 T익스프레스가 생긴 것과 낡은 관람차가 멈춘 것이다. 운영을 멈추자 그 흔적조차 없어진 ‘독수리요새’에 비해 무지개색 관람차는 파리의 에펠탑처럼 에버랜드의 랜드마크가 되어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던가, 어떤 분야의 고전이 되어 시간의 흐름에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일엔 경외감이 든다. 회전목마도 그중 하나다.
노란 알전구의 빛이 유려한 말을 비추는 회전목마는 광장 한가운데에 배치되어 있다. 조카들과 회전목마를 타려고 기다리다, 흔들림 없이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이는 말들은 어린이가 타기에도 재미 하나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왜 타는지 의문이 들어 동생에게 물었더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회전목마를 타는 것은 ‘나 놀이공원 왔다.’ 그 기분을 만끽하기 위한 것이란다. 생각해 보면 세월에 무뎌진 나도 에버랜드 입구를 통과해 탁 트인 광장을 디딜 때만큼은 놀이공원에 왔다는 설렘이 스쳐 지나가 심장이 짜릿하다. 이것과 비슷한 이치일지, 대답을 듣고 회전목마를 타니 멀거니 앉아있는 시간에서 놀이공원이 주는 소회를 곱씹어보는 시간이 된다. 조카들이 더 자라 이모를 뒤로하고 친구들과 스스로 에버랜드를 갈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 부지런히 더 쫓아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