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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C Jan 31. 2023

한국인의 리추얼

‘매일 새벽 4시 기상,

대여섯 시간 쉬지 않고 일한 뒤,

오후에는 달리기나 수영. 그리고 9시 취침.’


몇 년 전 독서토론 모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리추얼에 대해 들었다. 처음 접한 단어 ‘리추얼’의 첫인상은 개인의 하루 중 매일 반복되는 절차 같은 것이었다. 자기계발 도구쯤으로 여기던 리추얼의 의미가 확장된 것은 『리추얼의 종말』(한문철 저)을 읽고 나서다. 이 책에 다뤄진 리추얼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나르시시즘 등으로 해체되는 개인과 공동체를 안정되게 지켜주는 하나의 신성한 집단적 의례이자 예식 또는 규칙이다. 자, 이렇게 말하면 어렵고 거창해 보이지만 한국인의 대표적 리추얼 ‘새해맞이’ 경험을 각자 떠올려보면 별거 아니다.


우리 부부는 지난 연말 제주도로 떠나 12월 31일까지 머물고, 1월 1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을 보냈다. 새해 당일, 그간의 달콤한 늦잠을 포기하고 일찍 기상해 짐을 꾸려 숙소를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마지막 아침을 조수석에서 우적우적 아쉬움과 함께 삼키며 가고 있는데 사이드미러에 거대하고 불타는 주황 덩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다! 일출이다!” 그것은 새해 첫 해맞이였다. 어제 보거나, 내일 봤다면 오늘만큼 더 멋지게 보였을까? 내 외침에 배우자는 차를 멈춰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도 하였다.(적당한 주차 자리를 찾지 못해 그냥 지나갔지만) 올해 첫해를 부지런히 일어나 보았으니 올 한 해가 잘 풀릴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장착되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집에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평소라면 다른 메뉴에 밀려 먹고 싶다 생각하지 못했을 ‘떡국’ 생각이 간절했다.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떡국을 먹으러 가겠다고 했다. 며칠간의 여행 피로와 이른 기상의 피곤함은 ‘떡국’을 먹겠다는 목표 아래 미뤄지고 있었다. 사실 떡국을 먹고 싶기도 했지만, 부모님과 함께 식사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짐을 풀자마자 친정으로 달려가 맛본 엄마표 떡국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새해에 반복되는 해맞이 리추얼은 올 한 해 잘 될 것 같다는 마법을 거는 순간이자 잘살아 보겠다는 다짐의 순간이다. 떡국 리추얼은 연말 각자의 약속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보낸 가족들을 한 상 앞에 모이게 하고, 새해 첫출발을 함께 보내도록 함으로써 우리에게 소중한 가족의 존재를 일깨운다. 한국인의 1월 1일 반나절만 보아도 두 가지 리추얼이 있고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 밖에 한국인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개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리추얼을 찾아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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