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아/킨더랜드, 2018)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사랑은 내 시간을 기꺼이 건네주는 것'(황소북스/2020)이라고 말한다. 병원에 계시는 어머니가 곁을 지키는 아들에게 시간을 빼앗아 미안해하는 말에 그 의미를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시간과 사랑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사랑이야말로 힘겨운 순간에도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힘이라고 말한다. 그 힘이 주는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그림책, 릴리아의 [파랑 오리](킨더랜드, 2018) 다.
[파랑 오리]는 단순하다. 그림을 채우는 색채만 해도 파란색과 무채색 두 가지뿐이다. 그림의 선도 단순해 누구라도 따라 그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등장인물은 두 명, 언뜻 보아도 성질이 확연히 다른 악어와 오리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기 악어를 모른 척할 수 없어 파랑 오리가 키우게 된다.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둘이 가족을 이루어 사랑을 키우고 지켜나가는 이야기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 가족 간의 이해와 사랑을 주제로 한 여러 작품을 만나 보았지만 이 책이 특별한 감동을 주는 이유는 뭘까.
단순함이 주는 감흥은 크다. 독자들이 쉽게 빠져들기도 하거니와 채울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넉넉해 여운까지 남는다. 간결한 문장으로 전개되는 긴 세월의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다. 함께 보내는 시간, 성장하는 둘 간의 사랑은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어도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악어는 점점 자라 어른이 되었다. 엄마인 오리보다 훨씬 크고 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엄마였던 오리는 작고 나약한 모습으로 변한다. 마치 우리 인생과 닮아있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치매에 걸린 오리가 자식인 거대한 악어를 알아보지 못했을 때는 안타까운 현실과 마주하는 느낌이다.
악어의 태도는 감동적이다. 엄마의 아기였을 때 엄마가 자기를 지켜주었듯 이제 엄마가 자신의 아기가 되어 엄마를 지켜주어야 함을 안다. 자식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지고 어떤 때는 종일 울기도 하는 파랑 오리지만 그녀가 무엇을 잊을 수 없는지, 어디에 가고 싶은지 악어는 알고 있다. 고령사회에서 치매는 사회적 질병이다. 다양한 치매 돌봄 서비스가 시도·제공되고 있지만 그런 제도를 이용하면서도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시간과 사랑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사랑이야말로 힘겨운 순간에도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임을 느낄 수 있기에 [파랑 오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작품을 만든 릴리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터넷 그라폴리오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파랑 오리]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