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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Feb 26. 2019

[D+12] 반 독거인으로서의 시작

난생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이와 방을 나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자취를 꿈꾸었다. 이유를 대보라면 떠오르는 것이 더러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은 점이었다. 26평 남짓한 집에서 아옹다옹 모여사는 우리 가족은 거실에서 대부분의 생활을 공유하기 때문에 늦은 밤 야식 하나 해 먹기도 여간 눈치가 보였다. 거실에서 주무시는 부모님 덕에 거실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고 내 방은 베란다에 세탁기마저 들어와 있던 터라 엄마의 출입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어릴 적부터 자취를 꿈꾸었고 집순이에 속하는지라 집이 주는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수많은 인스펙션 끝에 이 것이 사람이 사는 것인지 닭장에 갇혀 지내는 것인지 인간의 기본권마저 생각할 지경에 이르자 내가 내린 결론은 '적어도 집은 편해야 해'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셰어하우스는 여러모로 나의 로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같이 사는 인도네시아인 린다언니 덕분에 비록 정확하진 않더라도 늘 영어로 말하는 것을 습관화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같은 아시아인인지라 문화적 충돌은 다른 국적에 비하여 적을 것 같았다. 게다가 린다언니는 '외국인 친구'라기보다는 '친척 언니 같은 외국인'에 가까웠는데 함께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이럴 때일수록 더 사람 만나는 걸 조심해야 해라는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아 역시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한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엇보다 방을 나눠 쓰는 사람이 광저우에서부터 함께한 지안이이기에 서로 적응하기가 한결 수월하였고, 둘 다 올빼미족인지라 누구 하나 불을 꺼달라며 미간을 찌푸리는 일 또한 없었다. 우리가 첫 장기 입주자인 덕에 모든 것이 새 것인 이 집에서 우리 셋은 마치 전부터 살던 우리집처럼 쓸고 닦았다.

Eastlakes Park

더불어 한적하고도 조용한 이 동네가 마음에 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집 앞에 커다란 공원이 있다는 점이었이다. 집 앞을 조금만 걸어 나가면 큰 릉과 드리워진 산책로가 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나무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의 고향처럼, 이곳 역시 초록에 둘러싸여 사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도심에서 살겠노라 다짐하였지만 역시나 어쩔 수 없는 시골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티에서 조금은 떨어진 이 동네에서 버스비가 꽤 부담스러울지라도 이보다 더 마음에 드는 집은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한국 사람이 적다는 것과 워홀러들이 잘 모르는 곳에서 산다는 점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장소를 나 홀로 찾은 기분마저 들었달까.

나의 첫 쉐어룸

여전히 나는 자취인으로서의 삶이 서툴다. 아침잠은 여전히 부족하여 밥은 고사하고 간신히 출근할 정도이며 저녁은 무엇을 해 먹어야 할지 몰라 여전히 샌드위치와 파스타로 연명하는 중이다. 심지어 효율적으로 장을 볼지 몰라 저번 주까지만 하더라도 매일 같이 울워스로 향하여 장을 보았을 정도랄까. 매일 저녁 한 끼를 무엇으로 때워야 할지 고민하는 일을 스물여섯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경험해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곳에서의 삶이 흥미롭다. 마음 맞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덜 서러울 것 같은 타지 생활에서 새로운 식구들과 함께 의지하며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함을 느낀다. 시드니에서 시작하는 반 독거인의 삶. 집 앞 공원을 홀로 돌 때면 무척이나 비슷한 나의 고향집이 떠오르는 새 동네에 나는 이미 정이 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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