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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Oct 03. 2021

2015.11.10 / 걸어서 역사 속으로

Heidelberg, Germany

나는 역사를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관광지를 갈 때면 되도록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이곳에 대해 알고자 했고, 미술관, 박물관을 갈 때마다 영어로 쓰인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 야속해했다. 이러한 연유는 과거를 알아야 미래를 안다는 어떤 거창한 목적의식보다는 그저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서였다. 어쩌면 어릴 적부터 일요일만 되면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애청하는 이유 역시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11월의 유럽을 비수기라 칭하는 이유는 시종 우중충한 하늘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독일에서도 화창한 날씨를 손에 꼽은지라 햇빛은 어느 정도 체념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날은 따사롭게 내리쬐는 볕은 아니어도 구름이 다소 옅었고, 단풍과 주황색의 건물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듯 도로의 경치도 제법 아름다웠다. 한국에서는 30분만 걸어도 많이 걷는다고 생각했던 나는 유럽에 와서 50분 정도는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버스나 트램을 이용하면 정거장 이름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탓에 주변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는 반면 걸어서 갈 때는 거리의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Mittermaierstraße 거리
네카어 강 (Neckar River)

중앙역에서 나온 나는 가이드북을 주머니에 찔러 넣곤 어떻게 하면 이 도시를 조금 더 많이 둘러볼 수 있을지 궁리했다. 가이드북에는 총 3군데나 둘러볼 수 있도록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에서 성까지 둘러둘러 가는 길을 알려주었는데 전날 Meng언니에게 성 하나만 보아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는 것을 들은 나는 그 일정이 얼마나 무리한 일정인지를 알고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근처까지만 가보자고 생각한 나는 곧바로 직진으로 걸었고, 얼마 안가 네카어 강이 보였다. 나는 독일의 한복판에서 심지어 유적지로 유명한 그 도시에서 양평을 떠올렸는데 오죽하면 사진을 받아본 친구들 또한 네가 유럽에 있는 것이 맞냐며 놀려댔다. 강 위아래로 언뜻언뜻 보이는 건물들은 서양식 인테리어를 지향하는 펜션들의 지붕 같았고, 사실 저렇게만 본다면 저곳이 양평인지 대성리인지 독일인지 통 알 수없을지도 모른다는 우스운 생각마저 들었다.


강을 뒤로하고 가족에게 보낼 셀카를 찍은 나는, 이내 강을 쭉 따라 건너보았지만 벌써부터 노을이 질 것만 같은 기분에 다시 발걸음을 돌려 중앙역으로 향했다.

Friedrich-Ebert-Platz
Antiquariat Canicio (헌 책방)
플뢱(Plöck) 거리

이어서 하이델베르크 성까지 장장 50분도 넘게 걸어갔는데, 도중에 걷다가 힘들어 포기하고 트램이나 버스를 타려 시도해보았지만 이미 중간까지 걸어온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아니야! 다시 도전해보자'라는 굳은 결심 때문이 아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했으면 진작에 중앙역에서부터 타고 왔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30분을 넘게 걷고서야 깨달은 것이다. 별 수 없이 구글맵을 킨 폰을 손에 쥔 채 또다시 직진을 하기 시작했는데, 플뢱거리로 들어서면서부터 내가 그 고생을 하며 걸어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그림이 되는 건물들 사이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생활자로 보였고, 비수기 때문인지 하이델베르크를 올라가기 전까지 관광객을 통 보지 못 했다. 심지어는 가다가 헌 책방도 보게 되었는데, 나는 차마 들어갈 엄두는 못 내고 밖에서 한참 동안 겹겹이 쌓아 올린 책들을 바라보았다. 책만 보면 사족을 못쓰는 나는 그곳을 들어갈까 말까를 몇 차례 고민을 하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 일은 유럽여행 중 후회하는 몇 가지 일들 중에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플뢱거리를 나오자, 나는 결코 하이델베르크 성이 나올 것 같지 않은 골목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구글맵을 맹신하고 있던 나는 지름길을 찾아준다는 구글을 신뢰해보기로 하였고 그렇게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정처 없이 걸었다.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왜인지 관광지는커녕 주택들만 빼곡한 동네로 들어가더니 땀을 뻘뻘 흘리며 등산을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이미 반 이상은 올라와 버린 터라 이제 와서 발걸음을 돌릴 수도 없었고, 그동안 구글을 믿고 손해 본 적이 없던 나는 언덕 위로 올라가면 해결이 날 거라는 믿음 하나로 언덕배기를 올랐다.

언덕을 힘들게 오르자 가파른 계단이 보였고, 나는 하이델베르크 성을 볼 수 있다는 마음보다는 드디어 지겨운 언덕을 탈출한다는 쾌감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윽고 계단 위에 오르자 나는 내가 지금껏 오른 길이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향하는 일반적인 경로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깔끔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길 가운데로 웬 여자애 하나가 툭 튀어나온 것에 몇몇은 놀래는 눈치였고, 나 또한 다 올라오고 나니 저 내리막길 하나만 본다면 저 길 끝에 플뢱거리가 있을 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드디어 고대하던 하이델베르크 성을 본다는 마음에 설레며 표를 산 뒤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려 하자 직원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한국인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바라본 전경

나는 하이델베르크에 가기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저 없이 가보기를 권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유적지가 주는 고요하고 쓸쓸한 멋보다도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저 풍경에 있었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바라본 도시의 전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마치 하늘에서 주황색을 뿌려놓은 것처럼 통일된 지붕 색은 가을과 어우러져 단풍과도 같았고, 그 탁 트인 풍경에 나는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당시 근방에 있던 관광객들 역시 도시의 풍경에 다들 탄성 했는데, 나는 몇 차례 사진을 찍다가 이내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더 기억하기 위하여 열심히 눈에 담았다. 사실 유럽을 다니면서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은 것을 절실히 후회한 첫 번째 순간이기도 하였다.


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로도 근무했던 나는 근처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이란 호칭에 귀가 쫑긋했는데, 도대체 어떤 학교이길래 이곳으로 교직원 연수를 보내주는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부러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선생님들 중 한 분께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드렸고 찍어주신 사진에 흡족해하며 이내 성 내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프리드리히 관
하이델베르크 성 (Heidelberg Castle)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성 내부를 구경하던 나는,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가득한 그곳이 못내 쓸쓸하게 느껴졌다.  노트르담 드 파리를 집필한 빅토르 위고는 하이델베르크 성을 두고 '이 성은 유럽을 뒤흔든 모든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 왔으며, 지금은 그 무게로 무너져 내렸다'라고 표현하였는데, 그의 말처럼 성은 곳곳에 자신이 겪은 전쟁을 항변하듯 성의 일부분은 파손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은 웅장한 자태를 보이며 발이 닿는 곳마다 자신이 여전히 건재하고 있음을 말했다. 오디오 가이드와 함께 성의 내부를 구경한 나는 마치 괴테하우스에서 느꼈던 것처럼 역사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기분마저 들었는데, 성으로 견학을 온 학생들이 시종 쾌활하게 웃는 것을 보며 이곳이 사랑받는 이유가 있음을 알았다.


전쟁과 번개로 갖고 있던 위용마저 잃어버린 그 성들을 다시 쌓아 올린 나라의 애정이야말로, 세월에 침착되고 그 빛을 발하는 성을 다시금 사랑받는 유적지로 되돌려 놓은 것은 아닐까.

성에서 내려오자 어느덧 노을이 졌다. 도시의 여운이 남은 나는 다시 걸어서 중앙역에 가기로 했고 지붕 색과도 같았던 노을빛은 어느덧 어둑해져 이내 곧 밤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중앙역으로 되돌아가면서 나는 수 없이 많은 자전거를 보았는데, 인도 옆에 나란히 놓인 자전거도로는 시종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걸어서 10분에서 20분이면 금세 다음 정거장을 만나볼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다소 불편했던 대중교통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지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때의 내 감정은 어땠는지를 떠올리며 배낭여행기를 수정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여행기를 쓴다는 것은 그때엔 뒤섞여있는 복합적인 감정들 중 수면 위로 떠오른 하나에 집중하며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가라앉은 그때의 감상들은 서서히 소멸하고 있다는 것이다. 힘들게 성을 올라 바라본 도시의 전경과 적막하고 쓸쓸하기까지 한 성의 내부를 보며, 나는 아마도 수만 가지 생각과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2만 리터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다는 거대 술통을 보고 놀랐을 것이며 어쩌면 당일 짧게나마 기록을 남겼더라면 나는 더욱 구체적인 감정들을 글로 정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날은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던 날 중 가장 쓸쓸하며 마음이 복잡한 날이었다. 어쩌면 하이델베르크가 더욱 쓸쓸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성이 갖고 있는 본연의 성질보다도 당시 그 성을 바라본 나의 시각은 아니었을까. 세월이 주는 어떤 적막함과 고요함이 그날의 나를 쓸쓸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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