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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29. 2021

2015.11.9 / 친애하는 중국인여행메이트M과

Frankfurt, Germany

언어가 다른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대화하는 동안 내가 구사하는 문장이 옳은 지 생각하게 되며, 나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서 Meng언니를 만나며 그런 조건에서도 불구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비록 우리가 서로의 말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전 날 컨디션이 엉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시내 관광을 마친 나는 다음 날 침대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기껏 여기까지 와서 무기력한 내가 보기 안타까웠는지 Meng언니는 나를 데리고 밥이라도 먹자며 끌고 나왔다. 중국인인 Meng언니와 한국인이 나는 별 수없이 영어로 소통하였는데, 언니의 영어는 몹시 수준급이어서 나의 말들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천천히 답해주었다. 그런 언니가 멋있어 보여 직업을 물었는데, 내 예상대로 언니는 무역 쪽에 일하는 3개국어 능력자였다. (그녀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총 중국어, 영어, 독일어였다.)

언니는 나를 이끌고 독일의 올리브영과 같은 DM에서 이것저것 쇼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마침 샴푸와 린스가 다 떨어져 가던 나는 생전 처음 보는 독일어에 어찌할 줄을 몰랐는데, 그녀는 친절히 내가 사야 하는 생필품들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덕분에 나는 걱정 없이 쇼핑을 마칠 수 있었고, 후에 우리는 다채롭게 비치된 립스틱들을 구경하며 발라보는 여유를 부렸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직후엔 그곳에서 화장품을 사 오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독일에서 남은 8일 동안 심심치 않게 DM을 볼 수 있었다.

낮에 본 프랑크푸르트암마인 파울 교회
다시 찾은 뢰머 광장
프랑크푸르트암마인 니콜라이 교회(Frankfurt am Main Nikolaikirche)와 젤라또

나는 언니를 이끌고 뢰머광장을 다시 찾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뢰머광장을 다시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바깥공기를 쐰 덕인지 몸살 기운이 조금은 달아난 것만 같았다. 언니는 내가 예상했던대로 뢰머광장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우리는 서로 사진을 찍어준 뒤 각자 젤라또를 손에 나란히 쥔 채 이윽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나의 여행은 사실 배낭여행임에도 불구하고 타이트한 동선 안에서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에 더욱 가까웠다. 유명 관광지에 구애받지 않고 골목을 누비는 여행을 꿈꾸면서도 막상 현지에 도착하고 나면 그것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쉽게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었고, 어렸을 적부터 그린벨트와 산을 등지고 살았던 터라 가로수길에 큰 로망 또한 없었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는 워낙 상업화된 도시인지라 뢰머광장을 제외하고는 꿈에 그리던 독일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수십 가지 글을 읽으며 내가 서서히 쌓아 올린 유럽의 이미지는 뭐랄까. 아스팔트 도로보다는 구석구석 패인 돌바닥을 걷는 곳에 가까웠다.


그런 연유로 나는 뢰머광장 이후의 일정을 모조리 언니에게 맡겨보기로 했다. 우선 언니와 나는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탓에 더 이상의 관광은 무리였고, 우리에게는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독일 가을의 날씨는 여전히 따사로웠고, 우리는 마인 강을 끼고 가로수길을 걸으며 언니가 가져온 셀카봉으로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노을이 저무는 강을 함께 바라보았다.

마인 강(Main River)과 아이제르너 슈테그 다리(Eiserner Steg)

사실 고하자면 나에게 마인 강은 특별히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은 강이었다. 주거지역과 논과 밭이 뒤섞인 지역에 사는 나로서는 심심치 않게 강을 보며 살아왔고, 복잡스러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나서야 그 고요함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강과 산과 들이란 마음 내킬 때마다 하루를 투자하면 손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한 자연친화적인 환경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강변이 다소 그립진 않았는데 타국에서 만난 익숙한 풍경은 괜스레 반가웠다. 익숙한 나의 동네가 떠오름과 동시에 마치 여행자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발을 붙히고 사는 생활자의 느낌마저 들었다. 언니와 그렇게 강을 바라보며 앉다가 그녀에게 인생 샷 하나를 건져주겠는 이유로 강 앞에 사진을 찍게 했다. 꽤 흡족해하는 언니의 반응에 뿌듯해진 나는 그 이후로 몇 장이나 사진을 더 찍어댔고, 잠시 들린 전시관에서도 많은 사진을 촬영한 다음에야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전 날엔 눈여겨본 가게들이 있었음에도 어두운 밤거리를 혼자 걷는다는 무서움에 서둘러 숙소로 도착하기가 바빴다. 그러나 당시 나에게는 동행이 있었고, 그 안도감에 용기를 얻어 혼자서는 가지 못했던 곳들을 언니와 함께했다. 몇몇 가게는 벌써 두 달 남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내고 있었고, 귀여운 것들을 몹시 좋아하는 나로서는 스누피와 루돌프와 산타에 넋이 나갔다. 나는 루돌프 발바닥 모양의 오븐 장갑과 루돌프 뿔 모양의 머리띠와 스누피 인형들 사이에서 무엇을 데려갈지 심각하게 고민하다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상점을 나와야만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민만 하다 못 산 물건들이 수두룩했는데 그것들은 대부분 실용성을 포기하고 귀여움을 택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언니와 낮에 간 식당을 다시 찾았다. 숙소 근처엔 먹을 만한 곳이 중국요리점을 제외하곤 특별히 없었고 언니는 계속되는 빵에 지쳤다고 했다. 밀가루 음식을 사랑하는 나 역시 계속되는 서양식에 질리던 참이었다. 언니는 실제로 중국인들 입맛과는 달리 음식이 달다고 말했고, 그 말에 나는 독일에서 먹은 중국음식들을 실제로 중국에 가서도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하면서도 우리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거진 이틀 내내 언니와 영어로 대화했던 나는 그즈음 영어가 꽤 늘어 있었다. 이 경험은 영어를 좋아했으나 울렁증이 있던 내게 두려움을 극복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다음 날 하이델베르크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언니는 떠나 있었다. 내 침대 위에는 언니가 선물로 남기고 간 중국 과자들이 놓여있었고, 나는 언니에게 감사를 표하며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들을 페이스북 메신저로 전송해주었다. 비록 나라와 언어는 달랐어도 직장생활에 권태를 느끼고 외국을 오게 된 것, 자국에 대한 애증으로 타국 살이를 꿈꾸는 것, 그리고 같은 동북아시아인들이 느끼는 묘한 친밀감까지. 나는 여행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보고 싶어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언니는 그때 나에게 했던 말처럼 중국이 아닌 호주에 거주하고 있었고, 우리는 언젠가 한 번 더 만나서 독일에서처럼 수다를 떨며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었다. 


그 후 Meng언니는 페이스북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나 역시 얼마 가지 않아 계정을 삭제하여 우리의 연락은 영영 끊기고야 말았다. 그렇게 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녀가 보낸 작은 친절이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그녀와 함께한 하루 그 자체가 유럽 배낭여행의 장점이 아니었을까. 여행이 아니면 만나지 못했을 국적의 사람과, 낯선 곳을 함께 걷을 수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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