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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Sep 15. 2021

2015.11.8 /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Frankfurt, Germany

피터 홀린스의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책 제목이 있다. 이 책이 불티나게 팔린 이유는 순전히 책 제목이라고 보는데, 아마 나 같은 사람이 홀린 듯이 이 책을 집었기 때문일 게다. 군중 속에 있을 때에는 혼자만의 자유가 그립고 홀로 있을 때에는 군중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이 그립다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들고 집에 오는 길에 스에서 가만히 눈을 감을 때면, 놀이공원에서 신나게 놀다가 이제 막 그곳을 빠져나오는 듯하다.


독일도착 후 이틀 동안은 사실상 여행 이래 홀로 보낸 첫 시간이었다. 독일을 선택한 이유도 꽤 단순했는데, 지도를 보면서 이탈리아까지 내려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친구가 유학 중인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다. 어떤 매력 때문에 그 나라에 있는 것인지 알고 싶었고,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를 홀로 만나러 간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다. 게다가 독일이란 나라는 찾으면 찾아볼수록 각 도시마다 갖는 특징 또한 달라서 오로지 한 곳만을 콕 집어 다녀오기엔 다소 아쉬운 감이 있었다. 결과적으론 그 덕에 독일에서 장장 열흘을 보냈다.

벨기에에서 혼이 빠진 뒤 독일행 기차에서 정신없던 나는, 캐리어만 챙긴 채 백팩은 고스란히 두고 오는 만행을 저질렀다. 어쩐지 등이 허전한 마음에 부리나케 객실로 돌아가 가방을 가지고 돌아왔고뒤늦게나마 정신을 챙긴 내가 지금 생각해도 대견할 지경이다. 내가 묵은 숙소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인근에 위치한 유나이티드 호스텔이었는데, 찾아가는 길은 수월하였으나 호스텔처럼 생기지 않은 외관 탓에 도착하자마자 선뜻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IS테러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시국이 시국이었던지라 도시 분위기도 뒤숭숭해 보였고, 호스텔이 위치한 골목 뒤쪽으로는 홍등가가 위치한다는 무서운 정보마저 접한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게다가 호스텔 1층엔 대부분 남자분들이었고, 내부로 입장하는 라운지는 클럽같아 보여서 내가 이곳을 맞게 예약했나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들어오자마자 어리둥절한 나를 보고는 안에 계시던 나이 지긋한 직원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체크인까지 마칠 수 있었고, 도시 이동을 무사히 했다는 안도감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당시 나는 약간의 몸살감기마저 있었는데, 여행지에 와서까지 잔병치레를 하는 것은 하나의 큰 낭비처럼 느껴져 지친 몸을 이끌고 찜 해둔 관광지를 찾아 나섰다.


절로 외로움이 느껴지는 가을 날씨에 낙엽을 밟으며 나는 괴테하우스로 향했다.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여행을 할 수 없었던 나는 시종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는데, 마침 절친인 S에게 보이스톡이 걸려왔다. 벤치에 앉아 통화를 하며 지나가는 사람을 보자, 어쩐지 더욱 외로움이 더욱 몰려왔다. 타국에서 홀로 맞는 가을은 벌써 여행에 지친 나를 더 고독하게 만들었고, 쇼핑몰이 밀집되어 있는 차일 거리의 상업적인 분위기와 삼삼오오 모여 쇼핑을 가는 군중들은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더욱 실감 나게 했다.

Frankfurt Goethe House (괴테 하우스)

복잡했던 차일 거리를 지나 괴테하우스에 도착했다. 사실 고전문학에 부담감은 없었어도,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그의 생가를 방문한다는 것에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한때 작가를 꿈꾸었던 사람이 대문호의 집필실을 직접 본다는 것은 꽤나 흥미롭고, 인상 깊었으며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국어 오디오를 손에 쥔 채 그의 생가 구석구석을 살펴본 나는 그의 가족이 이 집에 묵었을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유럽의 고택이 주는 고풍스러움과 고즈넉함이 좋았고, 그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다는 책상을 직접 본 순간 글로만 접했던 한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들어온 느낌에 기분이 묘하기도 하였다. 이곳을 방문하기 전 그의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울 만큼.

뢰머 광장 (Roemer Square)

여행 중 외로움에 잠시 권태기가 몰려오려던 나를 격려하듯, 동화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뢰머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뢰머 광장은 내가 꿈꾸던 독일 그 자체였고, 다소 한적했던 지난 거리들과는 달리 광장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귀찮음을 무릅쓰고 낮에 다녀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노을빛으로 물든 뢰머 광장은 낭만적이었다. 분수 앞에서 다정하게 키스하는 연인들이 무척이나 이뻐 보였고, 내 환상을 모두 충족하듯 분수 위로는 석양이 물들었다. 광장 안 상점들이 내뿜는 주황색 빛들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속 전구처럼 점점 어두워지는 광장을 밝게 비추었고, 당장이라도 상점 안에 들어가고픈 마음을 누른 채 찍은 사진들에 흡족해하며 광장을 빠져나왔다.

유로 타워(Euro Tower) & 파울 교회 (St. Paul's Church)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용기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어두운 프랑크푸르트의 밤거리를 서슴없이 걸어 다녔다. 도중에 구글맵을 보며 공사장 근처를 지나다 차에 치일 뻔한 아찔함도 있었으며, 점점 한적 해지는 거리가 무서워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영롱하게 빛나는 유로 타워의 배너가 예뻐서 무서움을 무릅쓰고 사진에 담는 호기도 부렸다. 영국에서 그렇게 호되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 이곳을 다시 오리'라는 마음으로 모든 관광지를 눈에 담고 싶었다. 덕분에 가이드북에 나온 프랑크푸르트의 주요 관광지를 다 둘러보았다는 뿌듯함이 들었는데, 결국 다음 날 몸살로 몸져눕고 말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잠들기 전, 나는 숙소에서 Y언니를 만났다. 빠른년생의 장점은 친구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필요에 의해 내 마음대로 나이를 줄였다 올렸다 할 수 있다는 것인데, 단점으로는 그러다 족보 충돌 사고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전에 런던에서 족보 사고를 겪은 나는 또래가 보이면 무조건 한 살을 더 올리자는 마음이었고, 당시 Y언니는 한 살이 깎이는 소중함을 몸소 실감했던 터라 우리는 약 며칠간을 동갑내기로 지냈다.(언니가 언니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 내가 뉘른베르크로 떠나면서였다.)


Y언니와 단시간에 친해진 이유는 우리가 서로 어린 나이에 직장인이라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별 수 없이 내가 직장인인터라 같은 직장인과 공감대가 더욱 형성되었는데, 무엇보다 우리는 '재취준생'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배낭여행을 오기 전 나는 직장인이라는 신분에 대해 환멸이 가득하였고 여행 후 돌아갈 곳이 없는 '재취준생'의 길을 선택했다. 마침 Y언니의 사정이 나와 같기에 더욱 큰 동질감을 느꼈고, 무엇보다 먹고사는 일을 잠시 멈추고 여행을 떠난 무모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언니와 나는 씻으러 가기를 멈추고 창틀에 기대어 우리가 왜 스스로를 먹여 살리던 일을 그만두고 이곳을 왔는지, 와서 어떠한 감정을 느꼈고 향후 일정은 어떤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대화를 통해 짧은 시간 급속도로 친해진 우리는 다음 도시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고, 언니와의 대화는 그 이후로도 늘 편안했던 것 같다.


비록 잠시 느낀 고독이었지만 나에게 있어 프랑크푸르트는 한 차례 휴식과도 같았다. 오로지 혼자여서 느낀 외로움이 내심 싫지만은 않았고, 혼자서 숙소에 돌아왔을 때 나는 다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다. 벌써 가을에 접어든 지금 다소 을씨년스러웠던 그때의 날씨와 그다지 치안이 좋아 보이지 않았던 호스텔 주변도 나에겐 마치 바싹 마른 가을 낙엽과도 같다. 이미 색이 다 바래졌지만, 그 형태는 언제나 가을을 떠올리게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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