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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6. 2021

2015.11.15~18 / 이상한 나라의 나

Munich & Rothenburg & Füssen, Germany

이상하고 기이한 사건들이 모여서 결국은 하나의 모험담처럼 여겨지는 날이 있다. 평화로운 뉘른베르크와는 달리 뮌헨로텐부르크퓌센은 나를 그런 모험담에 뛰어들게 만든 도시였다로텐부르크라는 도시에서 상상해볼 수 없는 아름다운 상점에도 들어갔다가 뮌헨에서 특이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큰 구덩이에 속수무책으로 빨려 들어갔듯이. 평상시에는 경험해볼 수 없는 일들을 가득 경험하고는 다시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Füssen의 Reichenstraße 거리

애초에 뮌헨에서 빠듯한 일정을 세웠던 나는 뮌헨 시내를 구경하기보다는 근교 여행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다. 비록 여행에서 누적된 피로에 지친 나머지 퓌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먼발치에서 보고 돌아와야만 했지만, 그때 그 장면은 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았다. 모두 성에서 나와 각자 집으로 돌아갈 즈음, 어두컴컴한 퓌센 성의 언덕을 오르며 영롱하게 빛나는 성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강 앞에 덜렁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바라본 그 성은, 몇 년 전 미국에서 보았던 디즈니랜드 성을 연상시킬 만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디즈니랜드의 성이 보랏빛을 내뿜으며 그 자체로 하나의 관광상품 같았다면, 어둡고 황량한 언덕 위에 놓인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청록색 빛을 영롱하게 띄우며 자신이 그 상품의 원형이라는 것을 주장하듯이 보였다. 카메라 렌즈로는 통 담아지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로텐부르크로 향했다. '로맨틱 가도'라는 이름으로 묶인 아름다운 도시들 가운데 꼭 하나는 가보자며 선택한 도시였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살을 에는 강추위에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을 염두조차 나지 않았고, 결국 내 눈으로 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기며 열심히 눈앞에 펼친 도시의 전경을 감상했다.


그러한 도시에서 영영 잊지 못할 장소를 꼽으라면 바로 로텐부르크의 크리스마스 상점 캐테 볼파르트일 것이다. 초겨울에 접어든 유럽의 날씨는 한국의 11월보다 더욱 온도가 낮고 칼바람이 불어서, 멋 낸다고 얇은 코트 하나만 가져간 나로서는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부피를 차지한다고 두꺼운 니트도 다 두고 온 터여서, 나는 벌벌 떨면서 로텐부르크를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커다란 호두까기 병정이 서있는 크리스마스 상점을 보자 홀린 듯이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 순간은 마치 어느 동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았는데, 상점 내부는 전체적으로 노란 조명을 비추며 어느 하나 지루한 것 없이 각양각색의 크리스마스 용품들로 즐비하였다.


작은 오르골부터 스노우볼과 다양한 산타, 눈사람, 루돌프 등등. 그곳이 주는 분위기에 홀딱 취하여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것도 까맣게 잊은 채 상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특히 아래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보이는 커다란 트리와 그 트리 주위를 애워 싼 인형들이 마치 나를 산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따사로운 햇살이 내비치는 4월의 풍경에 비하여 실제로 내가 간 11월의 로텐부르크는 다소 황량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그 크리스마스 상점은 여전히 눈을 감아도 떠오를 만큼 내 마음에 아로히 새겨졌다. '크리스마스'라는 말만 들어도 그곳을 상상하면 언젠가 꼭 다시 가보리란 생각에 마음이 온통 설렐 만큼.

크리스마스 상점(Kathe Wohlfahrt)에서 가져온 아이들

로텐부르크가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에서 앨리스가 처음으로 만난 신비한 세상 같았다면, 뮌헨 호스텔에서 만난 Y는 너는 누구냐고 묻는 쐐기벌레와도 같았다. Y는 호스텔 라운지 바에서 처음 만난 나와 같은 여행객이었는데 자신을 자기 계발 강사라며 소개했다. 그는 나에게 그동안 자신이 다녀왔던 여행과 그곳에서 찍은 영상들을 보여주며 자신이 여행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더불어 그는 자신의 주된 강연 내용이 'Follow your heart.'라며 자신이 생각해오던 사서의 이미지와 그날 처음 만난 나에 대하여 지레짐작하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그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그에게서 오래 붙잡혀있지 않았겠지만, 낯선 이의 궤변에 심금을 울릴 만큼 당시의 나는 내 삶을 꽤 지난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의 섣부른 조언은 으레 나이가 어린 사람들에게 건네는 격려였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달변가인 그의 기에 눌려서, 당시엔 그저 반박하지 못한 채 수긍했던지도 모른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인생은 궤변이라 생각한 그의 말처럼 꽤 'Follow my herat'하며 살아왔다. 무려 6년이나 지난 지금의 Y는 과연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자뭇 궁금해진다. 5년 전에 떠난 여행을 다시 회상해보니, 지금 그 시간들은 흡사 꿈과도 같이 느껴진다. 앨리스가 마지막에 긴 하품을 끝으로 현실로 돌아온 것처럼, 익숙한 감각은 남았지만 기억은 휘발된 것과도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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