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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9. 2021

2015.11.25 / 한밤의 호스텔 미아

Vienna, Austria

국경을 넘는 일이 유럽에서는 아무리 쉽다지만 매 순간 나는 꽤 용기가 필요했다. 유럽에서는 국경을 기차타고 넘는다고 할지어도 새로운 곳에 나 홀로 던져지는 일은 겪을 때마다 모험이었다. 심지어 프라하에서 생활자처럼 여유롭게 지내던 나로서는 오스트리아로 가는 여정에 많은 부담을 느꼈다. 그날 밤 내가 어떤 위기에 봉착할지를 예상이라도 했듯이.

A&O Wien Stadthalle Hostel&Hotel

프라하에서 저녁 기차로 오스트리아에 떨궈졌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 곳에서 여행을 하면서 영어란 무섭고 공포스러운 존재일지어도 다른 언어에 비하면 얼마나 친숙한 언어인지를 줄곧 체감하곤 했는데, 한밤중 도착한 오스트리아의 첫인상 역시 그러했다. 낯선 독일어 속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넓디넓은 오스트리아 중앙역에서 화장실을 간신히 찾아 헤맸는데, 이놈의 유럽 화장실들은 심히 불친절하게도 대부분 유료화를 받았다. 밖에서 화장실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 사실도 깜빡 잊고 있던 데다가 주머니를 뒤져보니 여분의 동전은커녕 현금도 없었다.


별 수 없이 나는 ATM기기를 찾기 위해 캐리어를 이끌고 중앙역을 휘저어 다녔고, 간신히 현금을 뽑아 생수 한 명을 사고는 가득 생긴 동전을 짤랑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곤 호스텔로 가기 위하여 구글맵을 켜곤 우여곡절 끝에 표를 발권 후 직원에게 재차 확인 한 뒤 간신히 트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 늦은 저녁은 아니어서 트램 안에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였고, 나는 함께 트램을 기다리던 어느 아주머니께 내가 가야 할 정류장을 보여드렸다. 친절한 아주머니께서는 트램 안에서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안내되자 여기서 내리면 된다고 재차 알려주셨고 나는 서역의 으슥하고 어두운 밤거리를 홀로 걸으며 어서 내가 묵을 호스텔에 도착하기만을 고대하였다.


이윽고 내가 예약한 A&O 빈 스타트할레에 도착했을 때, 나는 어서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고 저녁으로 산 초밥 한 팩을 뜯고 싶은 마음이 강렬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수월했던 호스텔 체크인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직원이 계속해서 나에게 홀로 왔냐며 묻는 것이다.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일행은 없다며 대답하였고, 직원은 이윽고 내가 실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나에게 예약확인서를 보여주였다. 그리고 내 눈으로 똑똑히 여섯 개의 침대가 예약되어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나는 어찌할지를 몰라 그저 'Maybe I mistake …'를 중얼거리다 이내 부킹닷컴에 전화를 걸었고 설상가상으로 당황한 나머지 유아기의 영어 실력은 옹알이 수준으로 퇴화하였다. 안 되겠다 싶은 나머지 나는 직원에게 대신 상황을 설명해줄 수 없겠냐고 핸드폰을 내밀었고, 다행스럽게도 직원과 부킹닷컴 담당자의 유창한 독어 속에서 나의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오히려 나는 다행스럽게도 4박의 10만 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에 1인실을 머무를 수 있었고, 온풍기가 이틀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뜨거운 바람을 뿜은 것 말고는 1인실 생활에 매주 만족하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6베드를 예약해놓고도 실수했는지 모를 만큼 이 호스텔의 가격은 저렴하였고, 오히려 유럽 배낭여행 중 처음으로 1인실을 묵어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린 것이다.


나는 짐을 풀기도 전에 누구에게라도 이 모험담을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방 사진부터 찍었고, 트램을 타기 전 저녁으로 사둔 차가운 초밥을 꾸역꾸역 먹은 뒤 짐을 풀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따금 유럽여행에서의 일화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 이야기를 마치 어떤 모험담처럼 늘어놓았고, 위급한 상황 속에서 어떤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어 영어가 속속들이 들렸다는 것이 놀랍곤 했다. 그러다 아무도 없는 6인실에서 홀로 5일을 보내야 했다면, 내가 잘못 예약한 이 호스텔에서의 숙박비가 1박 10만 원을 웃도는 곳이었다면 하는 생각에 미치자, 당시의 상황이 해프닝으로 끝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니까 여행은 결국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에 내던지는 어떤 익스트림 스포츠류의 하나는 아닐까. 그 익스트림 스포츠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성취감은 살면서 때때로 웃음이 나오는 소소한 추억과 '이제 나는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거야' 류의 자기 암시로 선변할 것이다. 비록 그 경험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고작 사소한 해프닝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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