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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23. 2021

2015.11.26~29 / 담배연기와 비엔나커피를

Vienna, Austria

나는 어릴 적부터 믹스커피를 좋아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공부를 핑계로 달달한 커피음료를 몰래 사 먹었고, 커서는 엄마와 주말에 TV를 함께보며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이 낙이었다. 이렇듯 나의 믹스커피 사랑은 일을 시작하고부터 더욱 깊어졌는데,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믹스커피를 마시며 창가를 바라보는 일은 고된 직장생활의 피로감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행복이었다. 심지어 일을 그만둔 시기마다 종종 그 시간이 그리울 정도였다. 나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믹스커피 30봉지를 유럽여행에 가져기도했다.


그런 내가 유럽에서 커피를 사 먹는다는 것은 곧, 카페라떼만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이야 아메리카노의 담백한 매력에 빠져있지만 당시엔 아메리카노는 내게 곧 사약을 의미했다. 홀로 유럽여행을 하면서 가장 불편했던 점은 아무래도 카페에서 커피를 사 먹는 일이었는데, 빡빡한 일정으로 가득 찼던 탓에 홀로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사 마실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심지어 낯선 이국에서 반가운 것은 역시 세계적인 브랜드인지라 나는 벨기에에서도 스타벅스를 찾았다. 결국 나는 비엔나에 도착하기 전까지 커피라곤 줄곧 코스타 내지는 스타벅스 등의 체인점커피를 음용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없었던 이유는 '하나라도 더 보아야 해'라는 생각으로 모든 관광지를 섭렵하고 말겠다는 욕심이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가이드북을 보지 않고 유명 관광지 몇 개를 콕 집어 둘러본 나라이자 홀로 스테이크를 사 먹을 정도로 용기를 부렸던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였다. 파리 IS 테러로 인하여 급하게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경유해야만 했던 나는 엑셀 시트에 가득한 여행 일정과 상관없이 다시 갈 곳을 알아보야만 했다. 체코 같은 경우 프라하에 대한 로망도 있던 터라 '어딜 가야겠다'라는 의지가 다분했는데, 오스트리아는 생소했던 터라 퍽 난감하였다. 게다가 여러 사람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았던 도미토미룸과 달리, 1인실은 편리한 만큼 고독하였다. 비수기였던 터라 호스텔 자체에 투숙객이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어두침침한 날씨와 으슥한 서역의 분위기는 나의 여행사기를 떨어트리기에 충분하였다. 심지어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날도 더러 있었다.

계획한 일정도 없었고, 1인실에서 묵는 호사를 부리던 나는 한국에 있을 때처럼 11시즈음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에 가까운 아침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때 발견한 곳이 바로 Kino City 1층에 위치한 어두컴컴한 커피숍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머무는 며칠 동안 나는 대부분의 브런치를 저곳에서 해결했다. 사실 알고 보니 유명했던 맞은편 Café Weidinger는 카페 내부도 보이지 않았던 터라 선뜻 들어가기가 조심스러웠고 별 수 없이 나는 길 건너편 큰 쇼핑센터 1층에 위치한 유명하지 않는 카페에서 토스트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어두컴컴한 카페 내부와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다소 한산했던 쇼핑몰 내부, 그리고 매캐한 담배 냄새까지. 한국의 카페만 상상했던 나로서는 처음엔 저 분위기에 다소 어색해하다가, 나중에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날의 일정을 계획할 만큼 그곳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그 카페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홀로 유럽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를 부린 유일한 카페가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커피를 배우며, 커피에는 단맛과 신맛과 심지어 과일 맛까지 난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그 이후로 비엔나에서 비엔나커피를 먹어보지 못한 것을 줄곧 후회하였다. 결국 나는 그 유명한 비엔나에서 오로지 저 커피숍에서 카페라떼만 마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스트리아를 떠올릴 때면 그곳이 그립다. 마치 유럽에 나의 단골집 하나를 만든 기분에서일까. 어쩌면 여행을 추억하는 일은 그 당시의 특별하고도 찬란한 경험과 더불어, 그곳에서만 맡을 수 있는 냄새와 분위기를 떠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무심하고 딱딱한 토스트와 코 끝을 스치던 손님들의 매캐한 담배연기, 그리고 우중충한 날씨와 으슥한 서역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렸던 어두운 조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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