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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8. 2021

2015.11.18~25 / 여행의 착색

Praha, Czech

여행이라는 것은 당시의 감정을 뒤로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착색되는 것은 아닐까. 여행 당시의 피로감과 권태로움 그리고 개인적인 고통들과 특별한 경험들은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어 오롯이 그 장소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이유로 여행 후 남은 사진들을 정리하는 것은 당시의 감정을 정리하는 일이자, 여행자에서 생활자로 돌아오는 어떠한 숭고한 의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프라하는 그러한 여행의 속성을 알게 해 준 도시였다.


그새 정이 들었던 독일을 뒤로하고, 독일에서 Flix버스를 이용하여 프라하로 향했다. 프라하는 계획이 없던 곳이었지만 당시 파리 IS 테러로 인하여 급히 노선을 변경해야만 했고, 할 수 없이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경유하여 로마에서 출국하게 되었다. 출국 전부터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보며 엑셀로 계획표까지 만들었던 나는 당시 이런 돌발 상황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그렇게 고생하여 만든 계획의 절반을 모두 취소해야만 했다. 테러라는 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내가 발 딛고 서있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에 공포스러웠고, 무엇보다도 절망이 도래한 그 도시에 나홀로 행복할 자신이 없었다. 그 시기에 나는 배낭여행이 단순한 경험이 아닌 그 모든 변수였음을 실감하였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 (Prague Old Town Square)

그렇게 도착한 프라하는 현대와 중세가 함께 어우러진 도시였다. 숙소가 있는 시내는 몹시 현대적이었고 그 옆으로 조금만 더 나아가 카렐교 근처로 향하면 중세 시대 유럽의 향수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시내 양옆으로 뻗어있는 화려하고 큰 쇼핑몰과 바닥에 깔린 돌바닥은 도시의 이중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도록 충분하였고, 관광지로 향하는 지하도에 걸린 수많은 그림과 기념품들은 이곳이 체코의 관광지임을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이윽고 카렐교를 도착하였을 때 나는 다리 아래로 가득 펼쳐진 진풍경에 잠시 마음이 일렁였다.

블타바 강(Vltava River)
카렐교(Charles Bridge)

다리 위에는 양쪽으로 즐비하게 거리의 화가들이 있었고 노을이 지는 블타바 강을 내려보는 일은 꽤나 황홀하였다. 좁다면 좁을 수 있는 그 다리에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멈춰 서서 사진을 찍거나 나처럼 석양을 바라보기도 하였으며, 푸른빛을 띄는 강의 풍경과 번잡스러운 다리는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강 건너 보이는 중세 시대풍의 건물들을 보자 유럽이 어딜 가도 디즈니 성을 연상시키는 하나의 동화 속과도 같았다.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였고, 나는 카렐교에서 나와 강가를 끼고 걸으며 괜스레 그 쓸쓸한 마음에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어쩌면 수년이 지나 개봉한 영화 <라라랜드>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부두를 걷던 셉의 마음을 이때부터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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