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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Nov 11. 2021

2015.11.13~15 / 내 마음이 초콜릿상자라면

Nuremberg, Germany

여행의 큰 장점은 각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란 말을 떠나기도 전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역시 배낭여행을 떠나기로 한 목적이 그것에 있었으므로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괜한 기대를 걸었다. 막상 여행을 떠나보니 배낭여행자에게 겪어볼 수 있는 문화라는 것은 오늘 발 딛고 서있는 이 도시보다도 호스텔에서 만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관광은 했어도 문화는 쉽게 체험해볼 수 없던 여행을 하던 와중 맨몸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배우게 된 B를 통하여 생활자의 문화에 대하여 배워볼 수 있게 되었다.


독일에 처음 도착한 날부터 B는 나에게 줄곧 데려갈 식당이 있다고 말하곤 하였다. 쇼이펠레만으로도 큰 만족감을 얻은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이길래 여러 번 말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B가 나를 안내한 곳은 '아침 뷔페'였다. 아침은 거르기 일쑤요, 어쩌다 한 번 먹는다 해도 주말 아침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미각을 상실한 채로 먹었던 그 아침이, 이 나라에서는 심지어 뷔페로 있다니. 뷔페라는 것은 고로 오후 내내 주린 배를 움켜쥐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폭식하듯 먹는 것이 아니었나.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40일 동안 아침은 벨기에 호스텔에서 제공한 조식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챙겨본 적 없던 나로서는 아침 뷔페라는 것이 매우 생소하게 느껴졌다.

ALEX Nürnberg에서 B와 아침식사

다소 이른 오전에 만난 B는 ALEX Nürnberg로 안내했다. 가게 내부는 전반적으로 레스토랑보다는 카페에 더욱 가까웠는데 중앙에 원형 바에서 각종 빵과 고기, 샐러드가 위치해있었다. 어떤 빵을 골라야 할지 몰라 한참을 살펴보던 나는 B의 추천으로 다소 퍽퍽해 보이는 빵을 고른 뒤 초딩입맛에 맞게 스크램블 에그와 베이컨을 한 아름 떠와서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독일에서 처음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던 그때처럼 아침을 앞에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B에게서 독일 사람들은 아침을 중요시 여긴다는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오전은 한산한 우리나라 식당과는 다르게 그곳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날따라 날씨도 쾌청하고 햇살마저 따사로워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상하는 외국에서의 주말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올빼미족 생활을 당장에라도 청산할 수 있을 것만 같았.


나는 그날도 어김없이 B 이야기를 나누며 푸짐한 아침을 앞에 두고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당시 나의 심리를 그녀에게 이해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B 나를 공감하며 위로해주었고, 비난받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그녀의 위로에 그만 또 울어버린 것이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창가의 따사로운 햇살도 마음을 말랑거리게 하기 충분하였고, 앞으로 나에게 닥쳐올 많은 일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불안이 몰려왔다. 아마도 그 레스토랑 안에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면 필시 저 사람은 왜 느닷없이 이곳에서 아침을 눈앞에 두고 울고 있는가를 생각해볼 터였다.

B와 마지막 식사를 하고 뮌헨으로 떠나기까지 하루 반나절나는 그 시간 동안 계획했던 근교 여행을 다녀왔다오스트리아에서 디지털카메라를 잃어버리는 통에 고작 세 장의 사진만을 건질 수 있었고, 그 후 기억나는 것은 낙엽이 무성한 기찻길뿐이었다. 비록 잃어버린 이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뉘른베르크란 오랜 친구의 타지 생활을 엿볼 수 있던 곳이자 새로운 인연들과 추억을 쌓은 곳이며, 다시 친구의 도시를 떠나 새로운 여행지로 출발하는 하나의 연결점과도 같은 곳이었다.


뮌헨으로 떠나기 전 기차역에서 만난 B는 나에게 작은 보라색 카드를 내밀었다. 그 카드를 받고서 나는 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행복하고 충분히 존귀하기 위해 태어난 경재야'라는 그녀의 말은 이따금 삶이 고단해지고 또다시 모든 것이 버거워질 때 꺼내보고픈 소중한 글이 되었다. 그녀는 말했다. 나의 배낭여행이 나의 삶에 있어 깊고 기쁜 마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어쩌면 B는 그 카드를 쓰면서 그녀 앞에서 두 번이나 눈물을 쏟은 나의 무른 마음이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배낭여행을 가기 전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었을까. 종종 일상이 고될 때 유럽에서 찍은 사진들을 꺼내보며 현실에 발 붙인 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는 한다. 여행이란 그렇게 내게 일상이 주는 무게와 버거움에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는 마음의 도피처 같은 곳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때때로 일상에서의 삶이 피로해질 때 초콜릿을 하나씩 꺼내어 당을 충전하듯 추억을 디저트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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