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3.29~30 /오로지 지나고나야 보이는 것들

골드코스트, 씨월드 (SEA WORLD)

by 사서 유

지갑을 잃어버리는 곤욕을 치른 뒤 나는 남은 이틀이라도 여행다운 여행을 마무리짓고자 멜로디라는 이름의 프랑스인과 함께 씨월드로 향했다. 브리즈번에서 룸메이트였던 그녀는 여행코스가 제법 비슷하다는 이유로 체크아웃 전 서둘러 서로 인스타아이디를 공유한 사이였다. 프랑스인인 그녀는 나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당시 나는 영어원어민들 사이에 섞여서 꽤 자신감을 잃고 있던 터라 그녀와 함께 완벽하지 않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멜로디는 씨월드를 가고자 한다는 나의 말에 본인도 함께 동행하고 싶어 했고, 그렇게 우리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개의치 않으며 씨월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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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방문한 씨월드는 비수기인 덕에 모든 장소를 열어두지 않아 사전에 보아온 사진과 정보에 비하여 다소 실망스러웠다. 날씨라도 화창했다면 우리의 실망감이 조금은 덜 했겠으나, 하루 종일 금방이라도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간신히 찾아온 씨월드에서 입장권 값만큼은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들어서기 전부터 갖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한껏 놀이공원에 온 양 굴어댔다. 평소 아쿠아리움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지만, 해외에서의 아쿠아리움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고, 막상 귀여운 펭귄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제법 재밌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표범 장식물 앞에서 팔짱을 끼고 꽤 귀여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겼고 서둘러 날이 더욱 흐려지기 전에 돌고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실물로 본 돌고래는 기념품샵에서 파는 돌고래 인형과 꽤 비슷하게 생겼다. 실제로 돌고래 먹이를 주는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신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처럼 가깝게 돌고래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와 멜로디는 우리가 씨월드에서 본 것 중에 돌고래가 가장 의미 있었다며 말했고 그렇게 돌고래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한차례 지켜보다가 이내 기념품샵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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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기념품샵을 구경하며 그곳에 있던 커다란 곰인형을 한 번씩 껴안고 사진을 찍어댄 우리는, 이윽고 밖으로 빠져나와 회전목마 앞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내부에 있던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피자로 때웠고 양이 몹시 적었지만 돈이 궁했던 나였기에 피자 한 조각에 만족해야 했다. 씨월드는 단순한 아쿠아리움이 아닌 하나의 복합 놀이동산과도 같아서 워터봅슬레이 등 몇 가지 놀이기구도 타볼 수 있었는데 난이도 하의 롤러코스터를 두세 번 타면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평소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공포에 질려 재미고 뭐고 한동안 정신이 얼얼하고 다리가 풀렸었는데, 씨월드의 봅슬레이 높이는 그 정도가 아니어서 연달아 이어서 탈 수 있었다. 다행히 날은 조금씩 개고 있었고 우리는 초반에 느낀 실망감을 뒤로하고 재밌게 씨월드를 즐기고 있었다.


뒤이어 간 곳은 한국에서도 꽤 볼 수 있었던 대형 수족관이었다. 씨월드의 건물 내부는 한국의 대형 아쿠아리움과 흡사했는데 오히려 그곳에 있던 바다생물 보다도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에 더욱 눈길이 갔다. 내 키의 반 정도 되는 조그만 아이들은 마치 자신이 바닷속에 들어온 양 행복해했고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나 마저 동심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속세에 찌든 어른들의 마음을 일순 정화시켜주는 독특한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그 사실은 종종 잊다가도 때때로 무방비 상태에서 나를 덜컥 체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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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날은 화창해졌고 우리는 오전의 낮은 텐션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들떠 온갖 조형물들에 탑승해보며 사진을 찍었다. 스펀지밥을 평소에도 좋아하는 나는 귀여운 조형물들 사이로 들어가 마치 아이들처럼 멜로디에게 사진을 부탁했고 그녀도 그 상황을 재밌어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당시 멜로디와 나는 어트랙션 차례를 기다리며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대화의 주제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 차이에 놀랐던 것 같다. 그렇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서로 다른 도시에서 만난 우리는 '여행자'라는 공통점 덕에 서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인형을 보며 귀엽게 웃던 그녀의 미소가 지금도 여전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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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에서의 마지막 날 하늘은 다행히 화창했다. 나는 S오빠와 마지막 저녁으로 한식당에 들러 해장국을 먹었고 다음날은 별다른 이벤트 없이 해안가를 거닐 수 있었다. 고카드를 환불하러 가는 여정은 몹시나 험난하여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지갑을 잃어버린 것에 비하면 견딜 수 있는 고난이었다. 어김없이 공항에 일찍 들러 남은 일주일 가량의 시간 동안 호주에서의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하늘은 그저 티 없이 맑았고, 나는 이제 1년간의 다사다난했던 호주에서의 시간을 시드니에서 마무리 지어야 했다. 보고 싶은 친구들과 보고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을 모두 볼 수 있을지 생각하며 시드니에서 숙업처럼 해놓아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공항에서 체류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상관없었다. 나는 당시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아쉬움과 기대감의 연속이었다. 시드니를 온전히 곧 떠날 사람으로서 체류해야 하는 열흘과, 익숙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나에겐 마지막 여행이나 다름없었던 골드코스트의 일정들이 시원섭섭한 감정으로 한데 묶여있었다.


그 후로 나는 시드니에서의 남은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무려 4년이나 지난 후에야 여행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다른 여행지에 비하여 외로움과 고독이 꽤 컸었던 동호주여서일까. 미국의 여행기와는 다르게 선뜻 많은 글들이 순식간에 써내려가지진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여행기마저 마무리하고 나면, 내 20대를 더 이상 복기할 일이 남아있지 않다는 마음에 완결을 미루어왔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호주를 상대로 새로운 글감은 없기에, 나는 초고를 작성하던 그날 20대를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여행기를 마쳐야 했다. 동호주에서의 여행은 내가 어떤 상태이어야 행복한지에 대해 깨닫게 해 준 여행이었다. 나는 혼자 있기를 갈망하는 만큼 함께 있기를 원했던 사람이고, 휴양지보다는 도시 여행이 더욱 잘 맞는 사람이었다. 30대가 된 지금 그때 그 휴양지를 다시 찾아갔다면 나는 조금 더 외롭지 않은 여행을 했을까.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던 것은 삼삼오오 함께 여행 온 이들 사이에서 느꼈던 공허함이었을까 이내 곧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이었을까. 어쩌면 부족한 주머니 사정 탓은 아니었을까.


이제와 보니 모든 시기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 왜 중요한 지를 알 것도 같다. 같은 여행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하기 마련일 테니까. 지금은 이 여행기의 초고를 쓰던 시간보다 조금 더 훌쩍 지나 만으로도 30대에 접어들었다. 당시 나는 초고를 쓰며 다음 나의 동호주여행은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라며 글의 마무리를 지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어느 곳에 서있던 그저 나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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