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 씨월드 (SEA WORLD)
지갑을 잃어버리는 곤욕을 치른 뒤 나는 남은 이틀이라도 여행다운 여행을 마무리짓고자 멜로디라는 이름의 프랑스인과 함께 씨월드로 향했다. 브리즈번에서 룸메이트였던 그녀는 여행코스가 제법 비슷하다는 이유로 체크아웃 전 서둘러 서로 인스타아이디를 공유한 사이였다. 프랑스인인 그녀는 나처럼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당시 나는 영어원어민들 사이에 섞여서 꽤 자신감을 잃고 있던 터라 그녀와 함께 완벽하지 않은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멜로디는 씨월드를 가고자 한다는 나의 말에 본인도 함께 동행하고 싶어 했고, 그렇게 우리는 우중충한 날씨에도 개의치 않으며 씨월드로 향했다.
우리가 방문한 씨월드는 비수기인 덕에 모든 장소를 열어두지 않아 사전에 보아온 사진과 정보에 비하여 다소 실망스러웠다. 날씨라도 화창했다면 우리의 실망감이 조금은 덜 했겠으나, 하루 종일 금방이라도 하늘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간신히 찾아온 씨월드에서 입장권 값만큼은 즐겨야 한다는 생각에 들어서기 전부터 갖은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한껏 놀이공원에 온 양 굴어댔다. 평소 아쿠아리움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던 나지만, 해외에서의 아쿠아리움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고, 막상 귀여운 펭귄들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제법 재밌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는 바다표범 장식물 앞에서 팔짱을 끼고 꽤 귀여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겼고 서둘러 날이 더욱 흐려지기 전에 돌고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실물로 본 돌고래는 기념품샵에서 파는 돌고래 인형과 꽤 비슷하게 생겼다. 실제로 돌고래 먹이를 주는 모습을 처음 보는지라 신기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처럼 가깝게 돌고래를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나와 멜로디는 우리가 씨월드에서 본 것 중에 돌고래가 가장 의미 있었다며 말했고 그렇게 돌고래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한차례 지켜보다가 이내 기념품샵으로 향했다.
한차례 기념품샵을 구경하며 그곳에 있던 커다란 곰인형을 한 번씩 껴안고 사진을 찍어댄 우리는, 이윽고 밖으로 빠져나와 회전목마 앞에서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재밌게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내부에 있던 푸드코트에서 간단하게 피자로 때웠고 양이 몹시 적었지만 돈이 궁했던 나였기에 피자 한 조각에 만족해야 했다. 씨월드는 단순한 아쿠아리움이 아닌 하나의 복합 놀이동산과도 같아서 워터봅슬레이 등 몇 가지 놀이기구도 타볼 수 있었는데 난이도 하의 롤러코스터를 두세 번 타면서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평소 놀이기구를 탈 때마다 공포에 질려 재미고 뭐고 한동안 정신이 얼얼하고 다리가 풀렸었는데, 씨월드의 봅슬레이 높이는 그 정도가 아니어서 연달아 이어서 탈 수 있었다. 다행히 날은 조금씩 개고 있었고 우리는 초반에 느낀 실망감을 뒤로하고 재밌게 씨월드를 즐기고 있었다.
뒤이어 간 곳은 한국에서도 꽤 볼 수 있었던 대형 수족관이었다. 씨월드의 건물 내부는 한국의 대형 아쿠아리움과 흡사했는데 오히려 그곳에 있던 바다생물 보다도 그 안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에 더욱 눈길이 갔다. 내 키의 반 정도 되는 조그만 아이들은 마치 자신이 바닷속에 들어온 양 행복해했고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나 마저 동심을 되찾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속세에 찌든 어른들의 마음을 일순 정화시켜주는 독특한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그 사실은 종종 잊다가도 때때로 무방비 상태에서 나를 덜컥 체감하게 한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날은 화창해졌고 우리는 오전의 낮은 텐션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들떠 온갖 조형물들에 탑승해보며 사진을 찍었다. 스펀지밥을 평소에도 좋아하는 나는 귀여운 조형물들 사이로 들어가 마치 아이들처럼 멜로디에게 사진을 부탁했고 그녀도 그 상황을 재밌어하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당시 멜로디와 나는 어트랙션 차례를 기다리며 잠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대화의 주제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는 프랑스와 한국의 문화 차이에 놀랐던 것 같다. 그렇게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서로 다른 도시에서 만난 우리는 '여행자'라는 공통점 덕에 서로의 시간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지금은 그녀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지만, 인형을 보며 귀엽게 웃던 그녀의 미소가 지금도 여전하기를 바라본다.
골드코스트에서의 마지막 날 하늘은 다행히 화창했다. 나는 S오빠와 마지막 저녁으로 한식당에 들러 해장국을 먹었고 다음날은 별다른 이벤트 없이 해안가를 거닐 수 있었다. 고카드를 환불하러 가는 여정은 몹시나 험난하여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럼에도 지갑을 잃어버린 것에 비하면 견딜 수 있는 고난이었다. 어김없이 공항에 일찍 들러 남은 일주일 가량의 시간 동안 호주에서의 삶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하늘은 그저 티 없이 맑았고, 나는 이제 1년간의 다사다난했던 호주에서의 시간을 시드니에서 마무리 지어야 했다. 보고 싶은 친구들과 보고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을 모두 볼 수 있을지 생각하며 시드니에서 숙업처럼 해놓아야 할 것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공항에서 체류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상관없었다. 나는 당시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아쉬움과 기대감의 연속이었다. 시드니를 온전히 곧 떠날 사람으로서 체류해야 하는 열흘과, 익숙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나에겐 마지막 여행이나 다름없었던 골드코스트의 일정들이 시원섭섭한 감정으로 한데 묶여있었다.
그 후로 나는 시드니에서의 남은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무려 4년이나 지난 후에야 여행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실 다른 여행지에 비하여 외로움과 고독이 꽤 컸었던 동호주여서일까. 미국의 여행기와는 다르게 선뜻 많은 글들이 순식간에 써내려가지진 않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여행기마저 마무리하고 나면, 내 20대를 더 이상 복기할 일이 남아있지 않다는 마음에 완결을 미루어왔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호주를 상대로 새로운 글감은 없기에, 나는 초고를 작성하던 그날 20대를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여행기를 마쳐야 했다. 동호주에서의 여행은 내가 어떤 상태이어야 행복한지에 대해 깨닫게 해 준 여행이었다. 나는 혼자 있기를 갈망하는 만큼 함께 있기를 원했던 사람이고, 휴양지보다는 도시 여행이 더욱 잘 맞는 사람이었다. 30대가 된 지금 그때 그 휴양지를 다시 찾아갔다면 나는 조금 더 외롭지 않은 여행을 했을까.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던 것은 삼삼오오 함께 여행 온 이들 사이에서 느꼈던 공허함이었을까 이내 곧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압박이었을까. 어쩌면 부족한 주머니 사정 탓은 아니었을까.
이제와 보니 모든 시기에 혼자 떠나는 여행이 왜 중요한 지를 알 것도 같다. 같은 여행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나이를 먹어가며 변하기 마련일 테니까. 지금은 이 여행기의 초고를 쓰던 시간보다 조금 더 훌쩍 지나 만으로도 30대에 접어들었다. 당시 나는 초고를 쓰며 다음 나의 동호주여행은 조금은 덜 외로울 것이라며 글의 마무리를 지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어느 곳에 서있던 그저 나일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