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 유 Dec 27. 2022

김초엽이 말하는 젊은 직업인으로서의 소설가

김초엽 <책과 우연들>을 읽고

김초엽작가의 책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나는 그녀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작가이면서 문단계의 떠오르는 아이돌이자 천부적인 재능으로 공모전을 휩쓴 그런 천재작가의 이미지랄까. 사실 이런 이미지를 그녀에게 씌운 것은 그저 치기 어린 질투일지도 모른다. 분명 나보다 더 많은 재능이 있기에 문단계에 떠오르는 신예가 된 것일거라며 상대방을 닿을 수 없이 우상화하는 그런 류의 질투(?)말이다.


나의 그런 어리석음이 얼마나 옹졸했는가는 그녀의 첫 에세이인 <책과 우연들>을 읽는 내내 체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책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의 그 소설가가 90년대생으로 치환된 것 같았다고나 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그녀가 포항공대를 졸업하고 무려 과학자를 꿈꾸었던 석사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유명작가라는 이유로 초야의 고수처럼 글을 써내는 예술가의 이미지를 상상했다니. 책 표지를 가득 채운 그녀를 닮은 일러스트와 <책과 우연들>이라는 감성적인 제목이 주는 느낌을 그대로 믿어버린 나는 그렇게 그녀의 책도 감성과 감정에 기반한 책일 것이라 오판했다. 그것이 그저 의미 없는 첫인상이라는 것은 책의 페이지수를 넘기는 만큼 깨달아갔다.


<책과 우연들>은 철저히 김초엽이라는 젊은 작가가 전업작가로 데뷔하며 겪었던 과정을 기술서처럼 풀어놓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그녀를 성장시킨 다양한 책들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녀의 작업방식이나 직업을 대하는 그녀의 고민 등을 엿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이목을 끄는 점은 그녀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어떤 고고한 예술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직업인'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점들은 앞서 언급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와 결이 비슷한데, 차이점이 있다면 김초엽 작가는 마치 책을 논문처럼 쓴다는 것이었다. 어떤 영감이 불현듯 떠올라 새벽잠을 설쳐가며 완성해내는 예술의 영역보다도 작법서를 토대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며, 선행연구를 찾아보듯 논문과 자료를 긁어모으는 학문적 글쓰기의 영역같달까. 그녀는 스스로를 운이 좋아 데뷔한 평범한 직업인으로 여기며 과신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장강명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를 읽은 뒤에 김초엽 작가의 <책과 우연들>을 읽은 나는 마치 이 3권이 임원, 부장, 대리의 업무일지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의 책은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한번 정리해보는 느낌이었다면, 장강명작가의 책은 사회생활의 회의감이 녹아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애증하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드라마에서 볼 법한 부장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김초엽작가의 <책과 우연들>은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신입보다는 업무에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만렙까진 도달하지 못한 대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구태여 이 세 명의 작가를 한데 묶은 이유는 세 사람의 에세이 모두 건조할 만큼 덤덤하지만 묵직한 화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김초엽작가의 책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그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제멋대로 가졌노라 말했다. 그중 대다수의 것들은 터무니없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그녀가 문단계의 아이돌이라는 것은 누구든 크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슬아작가가 인디계를 책임지고 있다면 김초엽은 생활형 싱어송라이터가 떠오른다. 아무튼 그녀의 책은 도리어 읽은 뒤에 소장을 결심하게 만든다. 적어도 <책과 우연들>만큼은 작가를 꿈꾸는 이라면 소장하기를 권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반인이면서 직업인인 주성철의 영화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