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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Apr 24. 2023

아무것도 아니면서 중요한 존재들을 위한 경이로운 진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지진으로 인해 자신이 평생을 수집해온 표본들이 무참히 바닥에 나뒹굴더라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남자는 포기하지 않은 채 하나씩 물고기표피에 직접 바느질을 해가며 이름표를 붙혔다. 이러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한 기자는 그의 이런 성품이 피폐해진 자신의 삶을 일으켜세울 한줄기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그 남자의 족적을 밟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기자인 그녀는 그 과학자를 통하여 분명 삶을 다시 살아낼만한 어떠한 위로나 영감을 받아야만 한다. 그래야 그를 향한 그녀의 집착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우리는 모두 아무 것도 아닌 존재들이라는 그녀 아버지의 가르침이 맞는지 확인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처럼 독자를 저자인 룰루 밀러의 소망으로 함께 끌어당겨 그녀와 함께 동행하는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 착각 덕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면, 중요한 것은 한 남자의 인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를 포함한 우리 모두 알게되는 것이다.


자기게발서를 맹목적으로 쫓아가보려는 르포르타주인 <자기계발을 위한 몸부림>의 두 명의 저자는 시중에 등장한 자기계발을 1년간 몸소 실천해본다. 자기계발이란 자기계발은 모두 따라했으니, 응당 삶이 나아져야하지만 그들의 삶은 전과는 크게 달라진 바 없다. 중요한 것은 삶을 움직이게 만드는 동기이지 그 것에 수반되는 행동이 반드시 그 것이어야만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과학자의 생애를 뒤쫓아가며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엿보고자 했던 룰루 밀러 앞에, 그가 진정 쫓아갈만한 자인가에 대한 자문은 마치 영화 <더 배트맨>이 떠오른다. 자신이 존경해마지 않던 아버지가 실은 악행을 저질렀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배트맨을 좀먹는다. 룰루 밀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는다. 책을 집필하며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뒤쫓아갔지만 그 끝에 남은 것은 허망함 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를 겁먹게 만든다.


바로 이 지점부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시 시작된다. 인생에서 가장 황폐하고 굴곡진 시기를 지닌 한 사람이, 폐허가 된 자신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임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한 명의 맹목적인 목표가 만든 업적 뒤에 과오를 알게되는 상황 앞에서 도리어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실은 각자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부여받았음에 그녀는 허상을 버리고 자신 앞에 있는 더욱더 아름답고 경이로운 진실을 받아들인다.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고작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톱니바퀴처럼 아구가 잘 맞아 돌아가면서도 그 모든 바퀴 안에 생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그 경이로운 진실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독자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자 화두일 것이다. 더불어 영화 <더 배트맨>에서의 배트맨은 결국 자신만의 소명을 찾아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역시 세상을 구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구함으로써, 삶을 구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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