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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 유 May 01. 2023

<종이달> 가짜로 얻은 진짜행복의 아이러니

돈에 자유롭고 싶으면서 종속될 수밖에 없는 현대인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ENA드라마 <종이달>의 1화에서는 도주 중인 이화의 입을 통하여 가짜 행복을 사기 위해 진짜 인생을 버린 사람이라는 문구가 내레이션으로 등장한다. 원작을 영화화한 일본영화를 보고서 배우 김서형이 애타게 판권을 가진 이를 찾았다는 드라마 <종이달>의 주제는 사실 돈이라기보다는 '유이화'라는 극 중 인물의 삶 자체에 가깝다. 돈이라는 소재로 여러 명의 인생을 조망한 원작과 달리 책은 한 여성의 이야기를 돈을  소재로 삼아 그녀의 추락을 항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설 <종이달>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보다 더욱 건조하고도 덤덤한 문체로 서술하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전업주부였다가 은행원으로 근무하게 된 리카는 자신을 통하여 예금을 맡기는 VIP돈을 조금씩 횡령하다가, 결국 연하 애인을 만나면서 거액의 금액을 횡령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녀의 회상과 그녀를 알고 있던 인물들의 회상을 통하여 소설은 그녀가 거액을 횡령하기까지의 족적을 밟는다. 


소설 <종이달>은 주인공인 리카 외에도 잘살았던 과거를 잊지 못하고 끊임없이 금전적으로 현재의 불만을 가진 와이프를 지닌 리카의 전 애인, 쇼핑으로 딸의 환심을 사보려는 이혼녀인 그녀의 친구, 그녀를 기억하는 그녀의 동창생이 등장하여 리카의 과거와 함께 화자가 뒤바뀌며 그녀의 과거를 쫓는다. 다만 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리카를 회상한다기보다는 각자가 돈으로 얻는 쾌감과 스트레스에 대해 서술하는 것에 가깝고, 각자의 이야기 끝에는 리카의 행동에 대한 자문을 남긴다. 한 여성이 소액에서 거액을 횡령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한 큰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자신의 예금에서 돈을 찾듯이 그 규모가 서서히 커져가게 되고, 이를 서술하는 과정이 매끄러워 공범이 되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든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와 얼마나 다른 인간인가에 대하여 앞서 언급한 세 인물과 함께 스스로 물어보게 되는 것이다.


돈에 얽매인 주요 인물과 주변인물들을 통해 흡사 소설은 자본주의에 대한 허무를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이보다 더 종속될 수 없는 현대인의 삶을 조망하는 듯 보인다. 마치 나는 리카와 상관없는 사람인양 굴었던 주변인물들이 그리하여 리카는 그 돈을 어디에 썼을까 등을 궁금해하며 서서히 이해되어 가는 과정이 꽤 자연스럽다. 허황된 로맨스였던 리카와 그녀의 어린 애인과의 만남이 결국 파국이었으나 그 순간만큼은 진정 행복했던 리카를 떠올려보면 가짜로 얻은 진짜행복이라는 것이 이보다 더 아이러니할 수 없다. 돈을 좇는 인생을 과연 그릇되었다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돈을 좇지 않는다고 하여 그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돈에 대해 자유를 꿈꾸지만 종속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진짜 행복을 자본주의사회에서 금전 없이 시작될 수 있을까. 결코 끝까진 행복할 수 없었던 리카의 결말이 진정 독자에게 남긴 것이 한 명의 횡령범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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