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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의 도서관 Oct 15. 2024

[연재소설] 월영서림 4편

달그림자가 머무는 어느 고서점의 이야기

제4편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떠나간 이는 반드시 돌아온다


서희는 선선해진 출근길에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뜨거운 여름의 열기와 습도가 진득하게 사라진 건조하고 서늘한 공기를 가로지르는 것만으로도 썩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출근길마저 즐거웠다.     


그리고 얼마 뒤, 서희는 자신의 감이 꽤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점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는 순간, 가녀린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갓난아이 울음소리인가 싶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 서희는 급히 소리가 나는 곳을 뒤졌다. 골목 구석에서 종이박스가 나왔다. 종이박스 안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미약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마, 여기서 나는 소리야?’     


서희는 다급하게 박스 위를 얼기설기 엉성하게 덮은 테이프를 뜯어내고 박스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주먹보다 조금 큰 크기의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서희를 발견하자마자 그녀의 손가락을 움켜쥐고 몸을 비볐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가녀린 울음소리와는 사뭇 다른 용맹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작은 드릴 소리 같은 소리와 함께 고양이의 몸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이 서희의 손가락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골골송인가?”     


서희는 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밝은 갈색과 검은 줄무늬를 몸에 두른 고양이는 낯선 이의 손길에도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몸을 맡겼다. 사람의 손을 탄 고양이가 분명했다. 순간, 서희의 머릿속에 최악이 상황이 떠올랐다. 낯선 이의 냄새를 묻힌 아기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에게 버림받는 상황이. 그녀는 서둘러 손을 빼고 고양이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안녕, 아가야. 네 엄마는 어디 갔을까?”     


보통 어미 고양이들은 새끼 고양이 곁을 멀리 떠나지 않는 편이니, 만약 어미가 있다면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서희가 몸을 숨기고 한참 동안 주변을 살펴보았음에도. 새끼 고양이에게 다가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결국 새끼 고양이에게 되돌아온 서희는 새끼 고양이의 상태를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비쩍 마른 몸과 눈곱이 잔뜩 낀 눈, 꼬질꼬질한 털을 보니 아이는 어미의 보살핌을 꽤 오랫동안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서희가 새끼 고양이를 조심스레 안아 올리자 박스 바닥에 쓰인 글이 그제야 눈에 띄었다. “저희 나비, 잘 부탁드려요.”라고 휘갈긴 메모였다.     


어떤 이유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저 메모를 쓴 이가 이 새끼 고양이의 전주인이자 유기범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서희는 욕지기가 튀어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서희의 품안의 새끼 고양이는 그녀가 조금만 발걸음을 옮겨도 작은 발톱을 세우며 그녀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주먹 한 줌 정도밖에 되지 않은 몸으로 그녀의 옷을 타고 오르기까지 했다. 행여 잘못하여 바닥으로 떨어질까 봐 서희는 고양이를 서둘러 품에 안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매달릴 수 있다니, 여러모로 대단한 고양이였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서희는 살갑게 머리를 부비는 새끼 고양이를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서희는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전전긍긍하며 품 안의 고양이와 함께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딸랑-.     


종을 울리며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품 안에 있던 새끼 고양이가 풀쩍 뛰어내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희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던 녀석은 순식간에 타깃을 변경했다. 새끼 고양이는 서점을 청소하고 있던 유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유현은 갑작스러운 고양이의 방문에 놀란 듯 얼어붙었다. 제 발치에 몸을 비비는 고양이를 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놀란 듯하였다.     


“너 또 이상한 거 달고 왔구나.”     


동주가 혀를 쯧쯧 차며 서희에게 핀잔을 던졌다.     


“아니, 이상한 거라니… 나는 그냥!”

“타고나길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 그냥 그게 네 팔자지.”     


말문이 막힌 서희를 보며 동주는 새빨간 혓바닥을 날름 내밀었다. 서희는 동주에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반박할 만한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비 오는 날 사람부터 새끼 고양이까지 그녀가 늘 무언갈 주워 오거나 데려온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이 아이는 대체 어디서 데려오신 겁니까?”     


유현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희는 혹시 유현이 고양이 알레르기나 공포증이 있는 건 아닐까 걱정되어 다급히 고양이를 유현에게 떼어냈다. 고양이는 그 와중에도 유현에게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쳤다.     


“아우, 얌전했던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아, 그러니까 ‘나비’, 아니 이 아이는 출근길에 요 앞 골목 앞 상자에 버려져 있더라고요.”     


이름에는 죄가 없지만, 서희는 상자에 쓰여있던 ‘나비’라는 이름을 쓰고 싶지 않았다.     


“…버려져 있었다고요?”     


서희의 설명에 유현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생각보다 더 안 좋은 유현의 반응에 서희는 다급히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유현 씨, 상의도 없이 다짜고짜 데려와서 죄송해요. 그런데 애 상태도 안 좋고 너무 졸졸 따라붙어서 도저히 두고 갈 수 없었어요.”     


서희는 풀이 잔뜩 죽은 채 유현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유현은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서희의 손아귀에 있는 고양이를 이리저리 살피고만 있었다. 그녀의 예상과 다른 반응이었다. 다행히 유현에게 고양이 알레르기는 없는 모양이었다.     


“고양이군요.”

“네, 고양이지요?”

“정말로, 고양이네요.”     


서희는 유현과 선문답을 주고받으면서도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왜 계속 묻는 거지? 설마 이 아이가 개로 보이는 걸까?’     


서희가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와중에도 새끼 고양이는 유현에게 가기 위해 온갖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유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 곧 서희도 깜짝 놀랄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서 냉큼 고양이를 받아냈다.     


고양이를 받아 든 유현은 고양이를 품 안은 채 턱을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서희의 예상보다도 유현은 훨씬 익숙하게 고양이를 다루었다. 고양이는 얌전히 유현의 손길을 받아내었다. 생각보다 유현의 반응이 나쁘지 않자 서희는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할 말은 꼭 해야했다.     


“유현 씨, 많이 놀랐죠. 정말 미안해요.”

“서희 씨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아마 서희 씨가 그냥 지나쳤다면 이대로 죽었을 겁니다.”     


일어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서희는 유현의 덤덤한 말을 듣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잘하셨습니다. 이 아이를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혹시라도 다시 원래 자리에 데려다 놓아야 할까 봐 잔뜩 걱정했던 서희는 유현의 칭찬을 듣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희는 생각지도 못했던 칭찬까지 받자 고양이에 대한 애정과 의욕이 크게 샘솟았다. 그녀는 유현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이 아이, 입양해 줄 분을 함께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여기저기 연락을 돌려보긴 할 건데, 저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또 제가 일하는 동안 집을 비우면 이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그러니까….”     


서희의 말을 듣던 유현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 반응에 서희는 겨우 진정되었던 심장이 다시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자신이 선을 넘는 부탁을 한 건 아닌지 온갖 걱정을 하는 동안 서희의 등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너 진짜 뭐 하자는 거야!”     


때마침 동주의 앙칼진 목소리까지 들려오자 서희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입양? 사람이 어쩜 그렇게 매정해? 여기까지 찾아온 애를 어떻게 뚝 잘라버릴 수 있어!”

“아, 아니. 내 말은 버린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양손에 물건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동주가 소리를 꽥 질렀다. 동주는 따뜻한 물로 적신 수건으로 유현의 품에 안긴 고양이의 얼굴을 정성껏 닦아주었다. 우유며 참치캔까지 가져온 것을 보아 새끼 고양이가 먹을만한 것들을 부지런히 찾아온 것 같았다.     


“나도 내가 키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동물은 한 번도 키워본 적도, 키워볼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고….”     


서희도 자신이 이 새끼 고양이를 키워볼까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커녕 햄스터 한 마리도 키워본 적 없었던 그녀였기에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고양이를 잘 알고 오래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입양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서희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지인들을 떠올리며 핸드폰 연락처를 뒤지려 했지만 곧바로 유현에게 저지당했다.     


“서희 씨, 다른 분들께 연락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유현 씨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제가 이 아이를 맡겠습니다.”     


유현의 제안에 서희는 깜짝 놀랐다. 유현이 새끼 고양이의 턱을 살살 긁어주자, 녀석은 고개를 쭉 빼 밀며 유현의 품에 머리를 비볐다. 고양이가 유현을 좋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도 퍽 능숙하게 고양이를 다루었다.     


“동주가 이렇게나 많이 좋아하고, 저도 동물을 좋아하니까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네, 그냥 보내기엔 왠지 아쉬워서요. 이것도 다 인연, 아니 묘연 아니겠습니까.”     


유현은 양손으로 고양이를 들어 올리곤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고양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찾아와줘서 고마워.”     


자신을 반기며 인사하는 유현에게 새끼 고양이는 마치 화답하듯이 힘찬 골골송을 들려주었다.     




서희와 유현은 인근 동물병원에서 새끼 고양이에게 필요한 물건을 급히 사기로 했다. 다행히도 서점이 골목을 조금 벗어나 나오는 대로변과 멀지 않은 곳에 동물병원이 있었다. 문을 열자 때마침 로비에 나와 있던 수의사가 손뼉까지 치며 서희와 유현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세요!”

“고양이를 갑자기 키우게 되어서요. 필요한 물건들 좀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어머, 물론이죠. 저도 집사거든요. 제가 꼭 필요한 걸로 좋은 것만 알려드릴게요! 아이가 몇 개월 정도 됐나요?”

“개월 수는 잘 모르겠고, 크기는 이 정도에요.”     


서희가 양손으로 어설프게 고양이의 크기를 가늠해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수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병원 선반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골라오기 시작했다.     


“한 3개월쯤 됐겠네요. 다행히 사료는 먹을 수 있겠어요. 개월 수도 잘 모르는 걸 보니 구조한 고양이인가 보네요.”

“네, 어쩌다 보니….”     


수의사는 한층 더 부드러워진 눈빛으로 유현과 서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서비스라며 이것저것 간식과 장난감들을 끼워 넣었다. 구매할 물건보다 공짜로 주는 물건이 더 많아질 지경이 되자 조용히 지켜보던 동물 보건사가 헛기침하기 시작했다.     


“크흠, 원장님!”

“에고, 내 정신 좀 봐. 좋은 일 하신 분들을 만나니 흥분했네요. 우선 급한 대로 당장 필요한 사료랑 식기 정도만 넣었으니 다른 필요한 건 인터넷으로 사세요. 훨씬 더 싸요.”     


병원에서 듣기 어려운 멘트가 나오자 다시금 지켜보던 동물 보건사가 요란하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나머진 제가 계산할 테니 얼른 다음 진료 보세요.”

“예방접종도 해야 하니 다음번엔 꼭 아이도 데려오세요. 잘 해드릴게요!”

“원장님!”     


결국 참다못한 동물 보건사가 끼어들며 원장을 진료실로 되돌려보냈다. 원장은 어깨가 축 처진 채로 투덜거리며 원장실로 돌아갔다. 속 썩이는 원장을 처리한 간호사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포스기를 빠르게 두들겼다.     


“다해서 5만 3천 원입니다.”     


서희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하지만 그녀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유현이 금색 글씨가 양각으로 새겨진 검은색 카드를 내밀었다. 서희는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유현은 능숙하게 패드에 서명한 뒤 물건들을 갈무리하였다.     


“일시불로 해주세요.”     


서희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유현을 바라보았다. 동물병원을 나온 뒤에도 서희는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아직도 충격에 휩싸였던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유현에게 물었다.     


“방금 전에 정말 카드로 결제하신 거 맞아요?”

“네, 카드밖에 없어서요.”     


덤덤한 유현의 대답에 서희는 더욱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평소에는 도인처럼 서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인연의 끈이니 뭐니 알 수 없는 말이나 꺼내는 건너편 세상 사람 같던 유현이었다. 그런 그가 신용카드를 쓰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이 모든 것이 몰래카메라처럼 느껴졌다. 왠지 모르게 속았다는 감정까지 들어 서희는 억울한 표정으로 유현을 노려보았다. 서희는 그동안 핸드폰은 커녕 웹서핑하는 모습도 보지 못했었기에 유현이 카드를 쓰는 모습은 왠지 반칙같이 느껴졌다.     


“서희 씨,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어요.”

“네? 그게 무슨….”

“귀신같이 생각했던 제가 멀쩡하게 카드까지 쓰니 놀란 것 아닌가요?”

“귀, 귀신이라뇨? 그렇게까지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럼 귀신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생각은 했다는 말이군요.”

“그, 그정도까진 아니에요!”

“서희 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이래 보여도 컴퓨터는 꽤 잘 다루는 편입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을 서희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었다. 팔짝 뛰는 서희의 반응을 보며 유현은 고개를 돌리고 살짝 몸을 떨었다. 서희는 그 모습을 보면서도 멀쩡한 사람을 귀신 취급한 것이 미안해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유현 씨, 방금 전에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서희 씨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요. 어쩌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니까요.”

“네?”     


서희는 예상하지 못했던 유현의 반응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걱정 마세요. 저도 아직은 피가 돌고 살이 붙은 산 사람이니까요.”     


‘…‘아직은’이라니?’     


유현은 당황한 서희에게 괜찮다는 듯 담담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현의 미소를 지켜보며 서희는 왠지 모를 찝찝한 감정을 느꼈다.     



     

서점에 돌아오니, 동주가 세모나게 눈을 뜨며 달려왔다. 그 새끼 고양이와 함께 구르기라도 한 듯 색동옷에는 고양이 털이 한가득 붙어 있었다. 새끼 고양이는 앞발로 머리를 감싸고 테이블 위에서 곤히 잠이 들어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울 애기 밥 사 오라고 했더니 둘이 데이트라도 하고 온 거야?”

“무, 무슨 소리야. 얘가 정말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서희는 괜히 유현을 의식하며 펄쩍 뛰었다. 반면에 유현은 아무런 동요 없이 병원에서 사 온 고양이용품을 한둘씩 풀어놓았다. 고양이는 대화 소리에 깨어나며 폴짝 유현의 손에 뛰어들었다. 아이는 작지만 옹골찬 골골 소리를 내며 부지런히 유현의 손에 몸을 비볐다.     


“얜 진짜 개냥이네요.”

“개냥이요?”

“강아지나 개처럼 애교가 많은 고양이를 말하는 단어에요.

“아…. 그렇다면 이 아이에게 정말 딱 맞는 단어네요.”     


유현은 집게손가락으로 새끼 고양이와 함께 놀아주며 쿡쿡 웃음을 흘렸다. 서희는 아이처럼 고양이와 장난을 치는 유현의 모습이 퍽 낯설었다. 이렇게 무방비 상태인 유현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원래 고양이들은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에게 경계가 심하지 않아요? 신기하네요.”

“어쩌면 제가 이 녀석에게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죠.”

“네?”

“그리고 서희 씨 말처럼 이 녀석 사실 고양이가 아니라 개일지도 몰라요.”     


서희는 농을 던지는 유현의 모습이 낯설어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 채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유현은 그런 서희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새끼 고양이에게 푹 빠져있었다.     


“아이 이름 말입니다. 순돌이는 어떻습니까.”

“순돌이요?”

“네, 이렇게 순하고 귀여운 고양이에게 딱 맞지 않습니까?”     


웬일로 동주까지 유현을 칭찬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순돌이’는 보통 강아지에게 붙이는 이름이었다. 어쩌면 이 작은 고양이가 개냥이를 넘어서 정말 고양이로서의 정체성을 잃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유현과 동주는 이미 고양이 순돌이와 사랑에 빠진 듯 보였다. 행복해 보이는 두 사람과 작은 고양이를 보며 서희는 이름 따위가 대수냐 싶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순돌아.”     


서희는 순돌이의 촉촉한 코를 톡톡 두드리며 용맹한 작은 식구를 환영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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