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하던 도중 아이 유치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1월 중순부터 다니기 시작한 유치원에 적응을 참 잘하고 있다는 말만 들어 대수롭지 않아 했는데 아이가 오늘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원 후 가는 태권도를 가기 싫다고 말했단다. 정확히는 수업이 끝난 후 픽업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싫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유치원을 다니는 친구는 빨리 가는데 아이가 혼자 남아 형님들과 함께 있는 게 싫다고 말했다고 했다. 엄마한테는 말하기 어려워 선생님께 대신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일정을 착각해 반차를 쓴 남편이 아이를 빨리 픽업할 수 있었다. 태권도에서는 아이가 기대하던 활동을 하여 기분 좋게 놀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 오늘도 나는 야근을 했다. 누군가 강요한 야근은 아니지만 최근 팀에서 생긴 이슈의 뒷수습을 위해 야근이 잦았다. 남편이 아이를 픽업할 수는 있지만 다른 때보다 더 늦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내가 픽업을 하더라도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하원하는 것도 사실이다. 또래 없이 나를 기다리던 아이 모습을 보며 신경이 쓰였었지만 애써 넘기고 모른 척했던 것 같아 미안하고 후회스럽다.
다행히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일찍 출근하면 비교적 일찍 퇴근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가 있다. 가장 빠른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면 비교적 늦지 않고 아이를 픽업할 수 있다. 사실 지금도 거의 8시 3,40분쯤에 출근하고 있긴 한데 출근 시간을 앞당겨야겠다. 문제는 야근이 있는 날인데 그런 날은 아이 픽업이 너무 늦어지는 것이다. 일단 대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가장 빠른 시간에 출근하고, 최대한 야근을 안 하고 불가피할 경우에는 주말 근무를 하는 방향을 고민해 보아야겠다. 아이 돌봄 서비스도 부담이 되지만 사실 정 못할 것도 아니다. 아니면 학원을 주 2회. 정도만 더 다니는 것도 고민할 수 있겠다.
일하는 엄마가 된다는 건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막상 닥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도 체감하게 된다.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이게 가장 큽니다.) 아이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경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훗날 아이가 엄마가 되어도 나처럼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그걸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를 위해서도 일을 포기할 순 없다. 육아휴직 기간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일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복직 후 업무를 시작하며 오히려 삶의 밸런스가 좋아졌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내 얼굴을 보자마자, 꼭 일찍 데려오겠다 약속해 달라는 아이 얼굴을 보고 마음이 좀 무너졌다. 이런 경험을 몇 번 더 하게 되면 일을 손에서 놓게 되는구나 싶었다. 선배 워킹맘들이 어떻게 경단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 요즘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고민을 좀 해야 할 것 같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좀 더 일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해야겠다 싶다. 아이의 마음을 세심하게 살펴야겠다. 이미 다친 마음도 잘 다독여줘야겠다. 일하는 엄마인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 본다.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좋은 직원, 동료가 되고 싶다. 그리고 일 말고도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싶다. 이런 욕심쟁이가 세상에 어딨나 싶기도 하지만 그중 무언가도 내려놓고 싶지도 않다. 작년 말 회사 노조에서 준비해 준 여성 리더십 관련 간담회에서 만났던 멘토님께 이런 상황을 토로하며 조언을 구했던 적이 있다. 멘토님은 모두 다 가져갈 수 없으니, 어떤 시기에는 어디에 힘을 주어 악셀을 밟아야 하는지 잘 생각해서 달려 나가라 하셨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하는 엄마의 삶, 신호등 앞에서 가야 할 길을 고르며 잠시 고민해 본다.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려고 글을 쓰다 보니 꽤 장문이 되었다. 언젠가 이 글을 보며 그땐 그랬지, 웃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