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 좋은 카페
비가 오는 날이면 창고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감성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낸다. 따닥따닥 빗소리에, 뿌옇게 떠다니는 먼지가 가라앉는 냄새에는 도서관의 답답함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짐을 싼다.
아침 일기예보를 봤을 땐 오후나 저녁쯤에 비가 온다고 했다. 우산은 항상 도서관에 가져다 놓기 때문에 굳이 챙길 필요는 없다. 저녁에 비가 온다고 일찍 도서관을 나설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저녁이 가까워 오니 바람도 많이 불고 하늘도 어둑어둑 해졌다.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우산도 있고, 할 일도 많이 남았는데 날씨가 꿀꿀해 괜히 다 하기 싫어졌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하면서도 결국 바람과 비를 핑계로 도서관을 나서자 했다. 마침 옷도 얇게 입고 나와서 핑계거리는 하나 더 늘었다. 따듯하게 입고 나왔다면 도서관에 쭉 있었을까.
써야 할 글이 아직 조금 남아서 집으로 돌아가 쉴 수는 없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 핑계거리 중 하나였던 옷을 따듯하게 갈아입고 다시 나오기로 했다. 그러니 도서관에서 짐을 쌀 핑계는 충분했다. 저녁을 얼른 해결하고 짐을 꾸려 도서관을 나섰다.
아직은 비가 오지 않는다. 혹시 몰라 도서관 사물함에 넣어두었던 우산을 가지고 나왔다. 거리엔 우산을 든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우산을 든 사람의 걸음걸이는 느렸고, 빈손인 사람들의 걸음걸이는 빨랐다. 분명 아침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왜 우산을 안 가지고 나온 걸까.
지하철역으로 걷는 도중 빗방울이 따닥따닥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아직 거세지 않았고, 빗방울 덩어리는 굵었다. '일찍 나오길 잘했다.' 우산을 때리는 묵직함이 내 오른손에 전해졌다.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괜히 빨리 걸었다. 그러지 않으면 왠지 비를 많이 맞는 기분이다.
지하철역을 나오는 순간 바람이 폭풍우처럼 많이 불었다. 물론 실제 그랬다기보다는 내 기분상 그러했다. 우산을 망가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펴고 뒤집히지 않도록 조심스레 바람의 방향과 반대로 들었다. 집에 들어가는 내내 든 생각은 '아, 정말 다시 나오기 싫다'였다. 그 생각은 집에 도착해서도 사그라들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가방을 잠시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라도 쉬고 싶어 앉았다. 십 초 정도 앉아 있었을까 더 앉아있으면 못 나가겠다는 생각에 얼른 일어나 따듯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가방에 노트북을 챙기고, 집에 올 때 쓰고 왔던 우산보다 더 큰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오늘의 행선지는 집 앞 스타벅스다. 사실 커피맛을 거의 구별하지 못하기에 카페를 갈 때는 분위기나 가격을 보고 선택한다. 가격을 보자면 다른 카페를 가는 게 나았지만, 오늘은 마저 써야 하는 글이 있기에 잔잔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스타벅스를 선택했다.
매장은 1층부터 3층까지다. 1층은 테이블이 몇 개 없고 바가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혹시 몰라 자리를 잡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갔다. 항상 손님이 많기에 3층까지 올라갈 각오를 하고 계단을 올랐다. 2층에 도착하니 의외로 한산했다. 나와 같은 마음인 사람은 별로 없는 걸까.
더 갈 것도 없이 2층에 자리를 잡았다. 주문을 위해 다시 일층으로 내려가 평소에 자주 마시는 카페라테 한잔을 주문해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분위기가 눈과 귀에 들어왔다. 음악은 잔잔한 피아노 소리였다. 테이블은 절반이 비어있었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노트북을 보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글을 쓰러 온 사람은 없을까?' 괜히 동질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신기하리만치 노랫소리 외에 아무런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책장 넘기는 소리와 노트북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뿐. 가방에서 주섬주섬 노트북을 꺼내 전원을 켰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니 괜히 그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역시 카페에 오길 잘했다' 싶었다.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 핸드폰을 들어 노트북과 비가 오는 창밖 풍경을 한 장 찍었다. '집에 이런 풍경의 서재가 있다면 매일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걸까.'
핸드폰을 내려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분이나 됐을까, 갑자기 시끌시끌해져 뒤를 돌아보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잔잔하던 카페는 금세 시끌벅쩍해졌다. 게다가 내 뒤에는 남녀 커플이 앉아 무지하게 큰 소리로 떠들고 있다. 이런 걸 바라고 온 게 아닌데. 심지어 창 밖을 보니 우산을 쓰고 다니는 사람도 없다. 비도 안 오나보다. 모든 건 다시 내 핑계거리에 불과해졌다.
그래도 비 오는 날, 카페는 또 다른 나만의 도서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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